[기고]'코리아 팬덤'을 만들고 확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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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한국전기연구원 전략정책본부장

한 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막대하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자국 우선주의 사조가 팽배하고 와해적 혁신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디지털전환(DX) 시대에는 거시적 안목으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실생활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더욱이 DX라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이종 간 기술 융합으로 하루가 멀다며 급변하고, 세계 1등 기술과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는 생존할 수 없음이 명확하다.

우리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의 과학기술 정책 동향을 살펴보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을 국가 핵심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칩과 과학법(CHIPS & Science Act) 시행으로 K-반도체와 K-전기차(배터리)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도 활로 찾기가 험난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라피더스' 반도체 동맹을 결성하고 반도체 산업 재도약을 위한 결기를 올리고 있다. 반도체 경쟁국 대만(TSMC)은 미국·일본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사면초가의 어려운 형국에 놓였다.

미국의 각종 보호주의적 제재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단언컨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미국은 우방과 동맹을 넘어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 제재에 의해 일거에 몰락한 것이 그 사례다.

안미경중(安美經中) 시대는 저물었고,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답답한 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묵묵히 핵심 기술을 축적해 온 K-방산과 K-원전 분야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성과를 거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에너지와 방산을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기술로 각인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이슈로 EU는 수입 품목에 대한 탄소 국경세를 멀지 않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또한 신재생에너지와 더불어 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녹색분류체계'로 지정돼 미래가 밝다.

주목할 것은 팬데믹을 거쳐 찾아 온 신냉전시대와 한동안 균형을 유지해 온 국제 정세 변화다. 그동안 글로벌 경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미국·중국으로 대표되는 G2 리더십은 현재 지나친 권위주의와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로 퇴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은 혁신 부재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어려운 상황이고, EU 또한 뚜렷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이타정신을 발휘해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등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심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특유의 근면성과 창발적인 한류(韓流) 문화를 융합, '코리아 팬덤'을 창출하고 확산시켜 나갈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첨단 기술력과 우수한 가성비를 토대로 'K-방산', 소형모듈원전(SMR)을 비롯한 '원전'의 성과를 상호호혜 원칙 아래 동유럽·중동·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등 제3세계로 확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이 지역 방산과 원전 시장을 주도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K-반도체'와 'K-배터리' 시장으로 연계해서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중국 및 미국 시장 일변도의 경직된 수출구조로 말미암아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위기 대응 역량에 따라 이를 단축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우리 모두 혼연일체가 돼 난국을 헤쳐 나갈 혜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김종욱 한국전기연구원 전략정책본부장 jukim@k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