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디지털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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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가 우리 인생살이와 가장 닮은 스포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처럼 둥글게 생긴 공 하나로 충분하다. 돌 두 개로 골대를 정하면 남은 공간 모두 축구장이 된다. 농구 골대나 야구 글러브 따윈 필요치 않다. 두 발로 달릴 수 있으면 되고, 날씨가 많이 나빠도 경기는 계속된다. 체급도 없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불리한 체격 조건은 그리 결정적 장애물이 아니다. 축구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다가도 순식간에 위기에 몰리고, 신들린 듯 골이 터진다. 작은 기회와는 계속 마주하지만 하늘의 도움 없는 골 득점은 쉽지 않다. 절호의 기회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어떤 각도로 날아들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뛸 뿐이다. 골키퍼가 앞을 막아선다. 안타까워하고 환호하는 사이에 심판이 불쑥 끼어든다. 우리는 심판에 저항할 수 없다. 노란 카드를 받거나 퇴장될 수도 있다.

축구는 과도한 비신사적 행위를 막는 것 외에는 심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규칙이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오프사이드만 없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프사이드야말로 현대 축구를 발전시킨 1등 공신이다. 오프사이드가 없으면 키 크고 체격 좋은 선수들을 상대편 골대 앞에 포진시키고는 그 앞에 높은 공을 계속 띄워 주는 '동네 축구'가 유리하다. 오프사이드는 공격수가 수비수보다 깊숙히 들어가서 슛할 기회만 기다리는 것을 무효화시킨다. '드리블'과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를 돌파해 내는 멋진 공격 장면만을 인정, 현대 축구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문제는 오프사이드는 정확한 판정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심판의 눈을 교묘하게 넘어서는 현란한 몸동작을 체득한 선수가 득점왕에 등극한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을 도입했지만 오심 논란은 계속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인공지능 기반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술(SAOT)을 도입하여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연출했다. 12대의 추적 카메라가 모든 선수의 발끝, 무릎, 팔꿈치, 어깨, 손 등 29곳의 관절 동작을 초당 50회 분석한다. 무선충전으로 6시간 동작하는 월드컵 공인구 '알 릴라' 중심에 위치한 관성측정센서(IMU)는 공의 속도, 방향, 각도, 충격에 의한 파동 등을 계측하고 GPS와 연계된 정확한 공의 위치를 초당 500회 판독실로 전송한다. 실시간으로 수집된 다채널 정보로 선수의 동작과 공의 이동, 경기장의 구조를 합성하여 가상현실(VR)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해서 심판의 신속한 판정을 돕고 오판을 막는다. 축구 경기 전체가 '디지털 트윈'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청중은 애니메이션의 강한 설득력에 오심 논란을 떨치고 경기에 몰두한다.

포르투칼 대 우루과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올려준 공에 헤딩을 시도했고, '알 릴라'는 골인했다. 호날두는 골 득점 세리머니까지 했지만 아디다스사는 페르난데스의 패스 이후 '알 릴라'에 어떠한 충격도 없었음을 증명했다. 호날두는 포르투갈 역사상 월드컵 최다골인 9골 기록에서 멀어졌고, 그날의 골 득점은 페르난데스의 것으로 기록됐다. 황희찬이 역전 골 세리머니로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진 후 드러난 검은 조끼는 브라톱 논란을 빚었지만 사실은 GPS, 자이로센서, 가속도 및 심박 센서 등을 탑재한 400여 가지 데이터를 계측 전송하는 과학적 선수 훈련장비 전자퍼포먼스추적시스템(EPTS)으로 밝혀져 2022 월드컵의 디지털 대전환을 널리 알렸다. 손흥민은 신사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수비를 돌파하며 황희찬의 슈팅으로 연결했다. '알 릴라'는 손흥민의 패스 시점에 황희찬이 수비수보다 불과 몇 센티미터 뒤쪽에서 뛰어나가는 장면을 선명한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 주었고, 한국팀은 16강에 올랐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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