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56〉AI 네이티브(Native),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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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기업의 진짜 역량은 조직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판단의 절차 안에 있다.”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남긴 통찰이다. 그 절차가 한번 굳으면, 새 기술이 들어와도 조직은 그것을 옛날 방식으로 소화해 버린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인 클라르나(Klarna) 콜센터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2024년, 인공지능(AI) 상담원이 화면 너머에서 700명분의 상담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 시간은 11분에서 단 2분으로 줄었고 회사는 직원을 5500명에서 3400명으로 줄이며 절감액을 자랑했다. 그런데 2년 뒤, 회사는 다시 채용 공고를 냈다. 고객이 원한 것은 빠른 응답이 아니라, 통화 저편에 '사람'이 있다는 확인이었다.

문제는 AI가 아니었다. 조직이었다. 클라르나는 기존 상담 조직 위에 AI를 얹었을 뿐, 판단의 절차 자체는 그대로 두었다. 이런 방식이 '임베디드(Embedded) AI'다. 기존 업무 위에 AI 기능을 나중에 붙이는 방식이다. 반대편에 'AI 네이티브(AI Native)' 조직이 있다. 처음부터 AI가 판단의 중심에 있다고 가정하고, 권한과 절차,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떠안을지를 다시 짠 조직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 그룹은 올해 보고서에서 '조직은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업무를 총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며 이 차이를 조직의 생존 문제로 규정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경제연구원 보고를 통해 발표한 임금근로자 3000명을 조사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생성형 AI 활용률은 대기업이 66.5%, 중소기업이 52.7%로 13.8%포인트(P) 벌어졌다. 그런데 지원 체계와 활용 역량을 갖추면 그 격차는 4%P까지 줄었다. 기업 규모가 아니라 '조직 환경'이 격차를 만든다는 뜻이다.

AI 네이티브 조직은 두 가지를 다르게 묻는다.

첫 번째, 누구를 뽑을지보다, '무엇을 AI에게 먼저 맡길지'를 묻는다.

두 번째, 승인 라인을 어떻게 유지할지보다, '그 판단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캐나다 이커머스 기업 쇼피파이(Shopify)가 그랬다. 지난해 4월, 전 직원에게 메모 한 장이 보내졌다. 인력을 추가로 요청하기 전에, AI로 왜 안 되는지부터 증명하라는 내용이었다. AI 활용 수준은 곧바로 인사 평가 항목에 들어갔다. 클라르나가 AI로 사람을 줄이는 데서 멈췄다면, 쇼피파이는 채용과 평가, 업무 설계의 순서 자체를 바꿨다. 이 질문의 순서가 두 회사의 방향을 갈랐다.

국내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일례로 SK텔레콤은 2025년 하반기, 조직을 통신과 AI, 두 개의 사내독립기업(CIC)으로 나눴다. AI 조직 산하 팀은 고정 부서 대신, 사업 상황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프로젝트 단위로 구성하고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사업은 최고경영자 직속 추진단으로 따로 뺐다. 결재선을 하나 줄이기 위해서다. 임원 수는 30% 가까이 줄었다. 부서를 그대로 둔 채 AI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판단이 가장 빨리 내려질 수 있는 자리로 권한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설계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70.4%는 AI 도입 로드맵조차 없다고 답했다. 로드맵 없는 조직에 AI를 끼워 넣으면, 결국 클라르나의 콜센터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수 밖에 없다.

콜센터에 사람이 돌아온 것은 후퇴가 아니다. 조직을 먼저 설계하지 않은 대가였다. 크리스텐슨의 말처럼, 절차가 굳으면 새 기술도 옛 방식으로 소화된다. 결국 혁신의 기술은 AI를 배치하는 기술이 아니다. 판단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자리가 아니라, 그 결과를 등에 지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로 권한을 옮기는 기술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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