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임기제 선출직의 한계, 재정준칙 법제화로 보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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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윤석열 정부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해 재정준칙 도입 등 건전재정 기조 확립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을 항상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현 세대의 이기심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약속이 재정준칙이다. 관리재정수지와 국가채무를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3%와 60% 이하로 관리하자는 것이 정부안의 골자다. 국가채무비율 상한을 초과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더 작게 관리하고, 적극적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미래 위기에 관한 예외 조항도 담겨 있다.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 9월 발의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노력하자는 재정준칙에 반대하는 논지는 세 가지쯤으로 요약되지만 핵심은 다음 선거의 표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 임기제 선출직의 한계인 포퓰리즘이다.

첫 번째는 재정준칙이 복지재정을 제한한다는 우려다. 복지 지출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보다 인구고령화 수준 자체가 낮기 때문이며, 복지재정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현행 복지제도만 유지해도 국가채무비율은 2045년 100%, 2060년 14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암울한 재정 전망에도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이 없는 현 세대의 복지 확대 주장은 포퓰리즘 전형이며, 미래세대의 부담을 확대한다.

두 번째는 미래세대도 혜택을 보는 인프라 등 가치 있는 공공투자를 통해 미래세대와 비용을 공동 부담하며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경우 국가채무를 늘려도 된다는 이른바 '골든룰' 이론에 근거한다.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골든룰을 적용하면서 국가채무 한도를 설정하지 않으면 국가채무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고, 모든 부담이 미래세대로 전가될 공산이 커진다. 현 세대의 비용 부담이 명확히 고려되지 않고 현 세대의 이기심에 부응한 포퓰리즘이 작동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미래 경제사회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정 역할이 제한된다는 기우다. 미래 위기에 재정 지출을 과감하게 늘리려면 현재의 위기 회복 국면부터 재정 여력을 확충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그런 노력을 함께하자는 취지가 재정준칙에 담겨 있다. 또한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들이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했듯 이런 걱정은 예외 조항으로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다.

현 세대의 복지 확대나 가치 있는 공공투자 등 필요한 재정 지출을 위해 증세하겠다는 국가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현재 주어진 예산이 한 푼의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국민에게 투명하게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초·중·고 교육교부금의 여유분에서 적은 금액을 재정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대학으로 돌리자는 정부 개편안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비합리적 교육교부금 산정방식을 앞장서서 고쳐야 할 다수당이 또 다른 임기제 선출직 교육감들의 자기 이해에 매몰된 이기적 주장에 동조하며 정부 지출 효율화에 반대하고 있다. 현 세대의 이기심과 임기제 선출직의 한계로 말미암아 교육교부금 같은 비효율적 재정 지출이 유지되는 한 증세 정책은 조세저항의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공짜점심에 익숙해진 현 세대는 더 많은 공짜를 요구하게 되고, 현 세대의 표심이 필요한 임기제 선출직들은 더 많은 공짜점심 제공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결국 현 세대의 이기심과 포퓰리즘의 상호작용은 국가 재정을 악순환의 고리로 몰아넣고 현 세대가 누리는 공짜점심은 우리 자식과 손자손녀들의 세금 부담으로 작용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한다. 임기제 선출직의 한계를 보완하고 정의로운 세대 간 재원 배분을 위해 재정준칙은 서둘러 입법돼야 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hagskim@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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