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민·관·산 종합토론회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
황산·산화구리 등 획일 적용 개선
급성·만성·생태 구별 차등 관리
환경부와 민·관·산이 함께 운영 중인 '화학안전정책포럼'에서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계는 황산·납·산화구리 등 유독물질의 유해성과 무관하게 취급시설기준·영업허가 등을 획일적으로 적용받았다. 향후 이 개편안이 제도화되면 급성·만성·생태 등 유·위해성을 고려한 맞춤형 규제가 적용돼 안전은 담보하되 산업계 부담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환경부 주최로 16일 서울 엘타워에서 '제3회 화학안전주간'에 열린 '화학안전정책포럼 종합토론회'에서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방안'을 주제로 이어온 논의 과정과 내용이 공개됐다.
2015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강화되며 유해성 심사에 따른 유독물질 지정 종이 2014년 722종에서 작년 1082종으로 급증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관리 대상이 확대 돼 사회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민·관·산 화학안전정책포럼을 구성했다. 공개토론회, 설명회, 간담회 등 의견을 수렴해 기존 체계의 핵심 문제를 도출했다. 또 산업계 부담과 시민사회 우려를 공유하고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 개편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산업계는 급·만성독성, 액체·고체 등 물질 특성과 관계없이 유독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해 획일적으로 화관법이 적용돼 부담을 호소했다. 급성독성 물질인 '고농도 황산' 취급업체와 만성독성 물질인 '저농도 납' 취급업체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소비제품도 유독물질로 지정 검토됨에 따라 사업장 화학규제가 일상생활까지 적용되는 등 국민 불편이 우려된다. 실제로 차아염소산나트륨 2.5%가 유독물질로 지정되면 락스 취급까지도 화관법 적용 대상이 된다.
김상헌 경성대 교수는 “화평법 등록과 유해성심사를 통해 유독물질 지정이 급증하고 유독물질 취급시 부여되는 획일적 의무로 인한 산업계 현장의 문제점을 확인했다”면서 “일상 생활공간까지 화관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부담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환경부는 포럼에서 논의된 결과를 토대로 '유독물질 지정관리체계'를 대폭 개편할 계획이다. 유·위해성을 고려한 맞춤형 규제로 안전은 담보하되 부담은 경감할 방침이다. 유독물질을 급성·만성·생태 독성으로 구별 지정하고, 유해성·취급량 등을 고려해 관리형태·수준 등을 서로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현 체계에서는 황산·납·산화구리 등 유독물질이 유해성 특성과 관계없이 동등한 취급시설기준, 영업허가 등을 적용받는다. 앞으로 황산 등 급성독성물질은 취급시설기준·영업허가 등 화학사고 예방규제에 집중하고, 납 등 만성독성물질은 발암성·환경호르몬 등 장기 인체노출 영향 저감 관리 대상 및 산화구리 등 생태독성물질은 환경배출에 보다 집중해 관리할 전망이다.
현장 이행을 개선하기 위해 반도체·항만 등 특화된 관리기준도 확대한다. 다음 달까지 취급설비가 모듈 형태로 수입되는 반도체 업종과 불특정 물질의 반출·입이 잦은 항만에 대한 특화된 관리기준을 마련한다. 발암성, 내분비계장애 등 만성독성물질은 국민건강·환경피해 최소화에 중점을 둔 '만성독성물질 관리 로드맵'을 마련한다.
김 교수는 “유독물질을 독성유형에 따라 인체급성유해성, 인체만성유해성, 생태유해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서 “유해화학물질 표시, 취급기준, 시설관리, 영업자관리에 관한 규정 등에 대해 유해성을 고려한 차등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성·생태유해성물질의 경우 차등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혼합물 관리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화학사고 위험성에 따라 화관법에 따른 관리의무도 차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화관법의 주요 관리수단은 △유해성 분류·표시 △유통·취급현황 모니터링 △취급시설관리 △영업자 관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 적용대상·수준을 달리하는 방안이다.
유해성과 고체·액체·기체 등 특성에 따라 취급량, 사고 시 확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영업허가, 시설기준 등 규제 차등화를 검토한다. 취급량에 따라 취급시설 정기검사 주기를 차등화하고 영업신고 제도를 도입해 영업자 관리 제도를 세분화한다. 이를 위해 급성, 만성, 생태독성 유형과 사업장 내 최대 보유량을 기준으로 화관법상 관리수준이 차등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성·생태독성 물질은 인체노출·환경배출 관리에 집중해 시설기준, 취급기준 등 화관법 적용을 차별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누출 시 화학사고 위험이 낮은 만성독성 물질 '고체 납'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긴급세안설비, 방류벽 등 취급시설기준을 면제하고 유통현황 등만 최소 수준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환경부는 민·관·산 화학안전정책포럼을 거치며 '화학안전정책포럼 운영규정'을 마련했다. 화학안전정책 설계단계부터 산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참여 방법, 역할 등을 규정화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포럼은 환경부와 이해당사자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고 포럼의 핵심 가치는 개방성과 투명성”이라면서 “현재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미래에 참여할 이해당사자까지도 모두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속가능 사회를 위해 '화학안전정책 범국민 참여 운영규정'을 마련했고 관련 훈령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 부소장은 “운영규정이 마련돼 임의적인 운영으로부터 벗어나 규칙에 따른 운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신뢰에 기반한 정책의 출발점”이라면서 “훈령은 환경부라는 정부조직이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이해당사자 정책참여와 소통의 도구로 공식적 인정을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가 화학물질·화학안전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고 점검·평가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과 의논할 수 있는 공식적 기제가 마련돼 예측가능하며 체계적 정책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준희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