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최근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또 다른 바이러스와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과 같은 재난형 가축전염병 방역 현장이다.
철새가 우리나라에 도래하기 시작하는 10월부터는 특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정부는 겨울철 가축전염병의 발생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를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평상시보다 강화된 방역대책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일 경북 예천 종오리 농장에서 올겨울 들어 처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자엔자가 확진됐다. 작년에 비해 20여일 정도 이른 발생으로 위험도가 높은 상황이다.
재난형 가축전염병은 한번 발생할 때마다 확산 방지를 위해 수많은 가축들이 한꺼번에 희생되고 많은 사람들이 고된 일에 투입된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농장에 소요되는 직접비용 외에도 출하정지, 가축과 사료 및 분뇨의 이동제한, 축산물 수급 불안 등으로 산업 전반에 막대한 규모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재난형 가축전염병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발생시 신속하게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가축전염병 발생 후 사후처리 중심'의 방역대책에서 탈피해 '사전예방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빅데이터 시대에 맞게 가축방역정보통합시스템을 구축해 위험도 평가에 기반해 선제적이고 정밀한 스마트 방역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몇 가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가축전염병 발생 위험도와 산업적 특성 등에 대해 분석·평가함으로써 보다 관리대상 지역과 농장을 정밀화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전국 가금농장의 62%가 중점방역관리대상으로 지정되어 차별성과 실효성이 낮았으나, 관리 대상 농장을 정밀하게 선별하게 돼 23% 수준인 1504호 농장을 집중적으로 점검·검사해 관리하고 있다.
둘째, 데이터에 기반한 위험도 평가를 통해 살처분 범위를 더 세밀하게 조정하게 됐다. 농장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경우 다른 농장으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살처분은 불가피한 조치이다. 하지만 그간 살처분 범위가 일률적이라거나 넓다는 의견이 많았다. 데이터 기반 위험도 평가가 작년부터 도입되면서 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 기존에는 발생농장 3㎞ 이내 전축종에 대해 살처분을 진행했으나 지난해부터는 500m 내에는 전축종에 대한 살처분을 진행하되 500m가 초과된 범위 내 농장에 대해서는 발생상황, 역학적 특성, 농장 유입 위험도 등을 고려해 2주마다 평가해 살처분 범위를 결정하고 있다.
셋째,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국가가축방역시스템인 방역정보통합관리시스템(KAHIS)으로 축산농장, 축산차량 등 축산업 정보와 질병발생정보, 방역관리정보 등 방역정보와 데이터를 축적해서 분석·활용하고 있다. 축산차량은 방역시스템에 등록하고 GPS 부착을 의무화해 철새도래지 등 출입통제구역 진입 여부, 농장 출입차량 소독 실시 여부 등을 실시간 확인·관리하게 됐다. 또 축산농장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경우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역학관계에 있는 차량 등을 빨리 확인해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한데 KAHIS 시스템을 활용해 발생한 농장에 진입한 역학 관련 차량과 사람을 신속하게 파악해 통제하고 있다. 실례로 지난 겨울 가금농장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47개 농장에서 발생했지만 신속한 차량·사람 통제로 농장과 농장 간 확산은 차단했다.
그러나 한정된 방역 인력, 자원을 가지고 지속되는 재난형 가축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와 ICT 등 첨단기술에 기반한 보다 스마트한 방역시스템으로 고도화해 나가야 할 도전과 과제가 있다.
우선 지금까지 정부 주도의 시스템이 아닌 농장 자체적인 방역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울산광역시 한 축산농장의 경우 농장주가 허락하지 않은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차단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차량을 통한 바이러스의 농장 유입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스마트축사와 KAHIS 시스템을 연계해 ICT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가축의 급이량·급수량 등의 정보를 수집해 모니터링함으로써 평소 데이터와 다른 특이점이 있는 경우 자동으로 농장주에게 경보를 보내도록 해 가축의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장에서는 가축질병 발생률이 낮아져 생산성이 높아지고 정부와 지자체는 모니터링을 통해 사전에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위험도에 기반한 과학적인 정밀방역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평가 범위가 현재 지역 단위 수준에서 농장 단위까지 나아가야 하며, 지역과 농가의 위험도 평가를 위한 다양한 지표와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역 관련 데이터 분석에 기반하여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방역 시스템에 중요한 영역은 데이터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수집하고 있는 정보 외 다양한 농장 내외부 정보 수집을 지속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스마트방역체계 고도화를 위한 도전과 과제를 넘어서기 위해 2027년까지 이와 같은 방식의 가축방역시스템을 더 스마트화해 나갈 계획이다.
방역시스템 스마트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장 종사자들이 축사 출입 전 장화 갈아신기, 손 소독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했다. 가축질병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다르지 않다. 가축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축질병도 정밀 데이터와 선제적 예측, 사전예방을 통해 '싸우지 않고 이겨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30년 가까이 농업 부처에서 근무한 농업정책 전문 관료다. 김 차관은 충북 진천 출신으로 청주 신흥고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1994년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2011년까지 농식품부에서 재정평가팀장, 장관비서관, 기획재정담당관, 농어촌정책과장을 역임했다. 2016년까지 새만금개발청 개발사업국장을 지냈다. 같은 해 12월부터 농식품부로 복귀해 창조농식품정책관, 식량정책관, 농촌정책국장, 차관보, 식품산업정책실장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다시 차관보를 맡았다. 김 차관은 쌀 수급 관리 등 쌀 정책과 농촌 삶의 질 개선 등 농촌정책을 담당했으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질병의 방역 대책을 주도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