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자국에서 생산·조립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자동차 구매자에게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에서 또 한 번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 움직임에 나서면서 중국 견제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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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슈머 미국 민주당 원내대표

미국 상원은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100석인 상원에서 찬성 50표, 반대 50표로 동률을 이뤘지만 부통령 겸직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장이 찬성 쪽에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상원을 통과한 법안은 오는 12일 하원에서 재차 표결을 거친다. 법안에 찬성하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인 점을 감안하면 가결 확률이 높다. 하원 통과 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즉시 발효된다. 일부 의원들의 반발이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통과를 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기후변화의 중대 위기에 맞서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로 투자한다”며 의의를 강조했다.

법안은 △에너지 안보 및 기후 변화 대응(3690억달러, 약 479조원) △처방약 가격 인하를 위한 전국민건강보험(ACA) 확립(640억달러, 약 83조원) △대기업 대상 최소 15% 법인세 부과 등을 담았다.

외신은 자동차 업계가 저·중 소득자가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7500달러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조항에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안에 따르면 오는 2024년부터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처리한 광물 비중이 40% 이상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3750달러를 지원한다. 또 같은 해 기준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부품이 50%인 배터리를 탑재하면 나머지 375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자국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미국을 비롯해 FTA 체결국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토요타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자동차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 판매하는 전기차 대부분을 한국에서 생산한다. 미국 조지아주에 지어질 현대차그룹 EV 전용공장은 2025년 완공 예정이다. 당장은 미국 판매 차량에 탑재할 현지 배터리 공급처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시점을 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은 전기차, 태양전지판 등을 생산하기 위한 제조 설비 투자에 10년 동안 수천억달러 규모의 세금 공제 및 인센티브 조항도 담았다. 주요 광물 가공 시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생산세금 공제 제도도 실시한다.


미국 공화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물가 상승 완화 효과가 작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증가하면 대미 투자가 줄어서 미국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노동자의 인금 인상 속도가 둔화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