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양성은 국가 과제다. 빈약한 자연 자원이라는 한계를 인력 자원으로 극복, 성장을 거듭해 온 우리나라는 이를 중요시 여긴다. 과학기술 인력 공이 특히 크다. 문제는 앞으로다. 인구, 인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 연구개발(R&D) 현장에서 과기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위기를 돌파할 번뜩이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 나아가 정부가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새로운 인력 양성 방향 설정 단초를 제공할 논의장인 '산·학·연 협력 인력양성 정책포럼'이 20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열렸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총장 김이환)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구자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원장 문미옥)이 행사를 공동 주관했다.
◇빠른 변화에 인력 수급 어려움…알고도 당한다
이날 포럼에서는 각계 각층 인사들이 과학기술, 첨단미래 분야 인력 양성과 관련한 현 세태를 분석했다. 부정적인 견해 일색이었다. 인구 자체 문제도 있지만 빠른 기술 변화에 우리나라가 전혀 대응하지 못하면서 인력 양성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과학기술유공자이기도 한 이현순 두산그룹 고문은 기조강연에서 “미래사회 산업기술은 워낙 빠르게 변화해 산업계가 패닉 상황”이라면서 “문제는 아는데, 변화 대응에 꼼짝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업도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하정우 네이버 AI랩 소장은 “소프트웨어(SW) 인재 부족이 심각한 상황으로, 개발자를 모시기 어려워서 인턴을 구하는 지경”이라면서 “역량있는 인재가 크게 부족하다”고 발표 석상에서 밝혔다.
이는 비단 한 기업 문제가 아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도 발표에서 “산기협이 지난해 조사한 내용에서 많은 기업이 '인재 확보가 어렵다' '대학교육은 현장실무능력 보완이 필요하다' 등 목소리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또 다른 산기협 조사에서도 뽑을 사람이 없다거나 인력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등 얘기가 나온다”고 밝혔다. 그만큼 산업계와 같은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어느 때보다 '협력' 가치 중요…중소기업 지원 신경 써야
포럼 참석자들은 인력 양성과 관련한 현재 어려움에 대응할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협업'이다.
참석자들은 '달리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홍성민 STEPI 과학기술인재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 산업·연구현장은 학과 전공뿐만 아니라 응용분야 현장(노하우) 지식도 계속 축적해야 업무에 임할 수 있다”면서 “대학 홀로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기업에서도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때문에 '산학협력'이 강조된다고도 말했다.
다만 문제를 알아도 실제 해법은 요원하다. 이현순 고문은 일례로 산학협력에 대한 기업 투자가 극히 적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이 대학에 주는 연구비는 기업 연구개발(R&D) 전체 비용 1.2%에 불과해 굉장히 낮다”고 전했다. 학교 역시 미온적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 교수는 기업이 원하는 연구에 관심이 없는 사례가 많다”면서 “그런 연구를 안 해왔기 때문에 관련 역량도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우수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정우 소장은 네이버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간 협업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 (네이버) 직원이 학교에 겸직 교수가 되고, 반대로 교수도 네이버에서 일하고, 학생은 롱텀 인턴십을 하는 일을 지난해부터 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서울대와는 '초대규모 AI센터'를, KAIST와는 '초창의적 AI 연구센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포럼 참석자들은 네이버 사례와 같이 학습이 비단 대학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산·연이 함께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산·학·연 각각이 인력을 기르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민 센터장은 이를 '어디서든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공동학습생태계'로 표현했다. 그는 이와 함께 '산업현장과 연계한 경력심화 체계' 구축 필요성도 역설했다.
기업에 인력 양성 도움을 줄 때는, 특히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현순 고문은 “중소기업은 국내 기업 99%로, 이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가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대학, 정부, 나아가 중소기업으로부터 물건을 납품받는 대기업도 중소기업 재직자 재교육 센터를 지역별로 설립,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현순 고문은 이와 함께 “기업 산·학·연 협력, 인력 양성 기여 관련 활동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지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교육제도 근본 개선 필요…“불필요한 규제 너무 많아”
인력 양성 근간은 교육인만큼 관련 제도를 근본 개선할 필요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재 불필요한 규제가 적지 않다는 참석자들 의견이 많았다.
안준모 교수는 일반 대학을 옭아맨 제약을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원, 등록금, 기본연구비에 자유를 줘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산학협력이나 계약학과에 대해서도 세태에 맞지 않는 규제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는 “계약학과 운영요령을 보면 계약을 맺는 기업과 대학 직선거리가 50㎞를 넘으면 관련 교직원이 징계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인턴십 수행 시 지도교수가 현장에 방문해 감독하지 않으면 역시 징계를 받을 수 있는 등 대학이 혁신 시도를 할 수 없게 막는 어마어마한 규제가 산재해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학혁신 규제샌드박스를 만들어 대학이 과감한 실험에 나설 수 있게 하면 산학협력 기반이 충실하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그러면서 “사람이 움직이려면 인센티브(혜택)가 필요하고, 대학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대학평가인데 산학협력 관련 인센티브는 전혀 없다”며 규제는 줄이고 유인 요소는 늘려야 한다고도 뜻을 밝혔다.
이현순 고문도 교육제도 규제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민과 관이 함께 개혁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서 “민관협력위원회 구성해서 산업계가 바라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UST와 같이 교육과 연구가 결합된 형태의 학교가 확대되고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UST 스쿨을 나온 강정미 기초과학연구원(IBS) 선임기술연구원은 “기업이 원하는 현장 학습을 거친 인재는 UST 커리큘럼을 통해 나올 수 있다”면서 “현재 이공계 인력 양성은 연구와 교육을 별개로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연구와 실험으로 최신 지식을 습득하는 UST 모델이 더욱 넓게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력 정보 DB, 정책 결정 기반 돼…해외 인력 유치도 나서야
이밖에 다양한 의견이 전개됐다. 일각에서는 재직자 및 구직자 등 인력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등 면밀한 관리로 미래인재 부족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새로운 정부가 강조하는 디지털플랫폼 정부에서 충분히 구현,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정우 소장은 “청년의 생애 전주기 관점에서 이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역량을 쌓았고, 취업했는지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면서 “이러면 어떤 기술 분야에 어떤 인력이 부족하고, 또 어떤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성민 센터장도 “과학기술 인력 데이터를 모아 움직임을 파악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을 보탰다.
산업계의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역시 같은 점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인 번호'가 있는데, 노동부에서 활용하면 관련 인력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서 “하다못해 이를 기업에서도 쓸 수 있게 하면 인력 수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인력을 수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도 우리 인력이 빠져나가는 만큼 우리 역시 세계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안준모 교수는 “글로벌 마켓에서 인재 확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특별비자, 외국인 국내 석사 시 체류기간을 인정해주는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현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UST KIST 스쿨 대표교수)도 “UST, KIST의 많은 외국인 학생이 한국에서 취업하기를 원하는데 우리 기업이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2년 쯤 후 퇴사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내국인 양성도 중요하지만 외국인 학생이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면 더 좋은 인재 확보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 내용에 대해 이미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강호원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양성과장은 “대학과 기업 간 협력체계구축 대학과 지역산업간 연계강화, 기술분야별 맞춤형 인력양성방안 도출을 추진코자 한다”면서 “계약학과 운영 장려, 출연연·대학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ICT 분야 기업 재직자 지능화 혁신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4대 과기원 중점연구소를 새롭게 설치해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 핵심 인재도 양성케 할 것”이라면서 “발표 내용 역시 적극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