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우리은행의 흔들린 신뢰, 무너진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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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으로 일하는 자부심은 신뢰와 책임감이 전부 아닙니까. 개인의 탐욕 때문에 은행권 전체 신뢰가 추락했다고요. 경제사범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은행 직원이 벌인 600억원대 초대형 횡령 사태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동종 업권의 은행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경쟁 은행의 분노는 치솟고 있다. 우리은행이 주거래은행인 법인이나 개인들은 '내 돈은 괜찮나' 하는 불안감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은행권 전체에 불신의 싹이 트고 있다.

물론 이 사태로 은행이 망하진 않는다. 우리은행은 횡령액 614억원을 우선 '비용'으로 처리하고 추후 회수금을 이익으로 계상하게 된다.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만큼 2분기 실적 부담이 늘어나지만 전체 재무구조로 볼 때 치명타는 아니다. 다만 이제 막 완전민영화 체계로 접어들고 실적 상승세를 타고 있는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정성·정량적 손실이 막심하다. 횡령액 가운데 실제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직원 개인의 무모한 일탈에 따른 이례적 사고로 간주하고 이번 사태를 원활하게 수습할 수 있을까. 우리은행은 이미 4년에 연속 횡령 사고 경험이 있다. 불과 작년까지 우리은행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내부통제 미흡 책임에 대한 중징계를 받았으나 징계 취소 소송을 벌였다. CEO에 DLF 사태 책임을 묻는 것이 가혹하고 부당하다는 게 당시 금융권의 중론이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장 재직 시절에 벌어진 대규모 횡령을 모르고 지나쳤다가 완전민영화의 첫 발을 막 뗀 시점에 돌이키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진 셈이 됐다.

금융권, 특히 1금융권은 신뢰가 핵심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기업과 개인이 돈을 맡긴다. 비록 금리가 높지 않아도 믿고, 맡기고, 빌리는 이유가 있다. 아쉽게도 은행권에서 직원에 의한 횡령이나 배임 사고는 매년 있었다. 금융당국 집계에 따르면 작년 은행권에서는 사기 8건(6억800만원), 배임 3건(41억9000만원), 횡령유용 16건(67억6000만원) 등 사고가 발생했다. 은행들이 저마다 내부통제 수준을 더 끌어올리며 투명한 경영을 강조하는 등 ESG경영을 핵심 기조로 삼은 것도 고객에게 흠결없는 신뢰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금융은 지난해 ESG경영 원년을 선언하고 이사회에 ESG 경영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ESG경영 내재화와 실행을 강화해 왔다.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금융계 전반에 걸쳐 ESG경영이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금융당국은 각 금융사가 스스로 내부통제를 점검하도록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체계와 관리·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은행을 수차례 검사한 금감원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613억원을 횡령한 직원은 2012~2018년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다. 첫 시작은 반신반의하지 않았을까.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계약금을 회사 전체가 까맣게 잊었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허술한 내부통제가 1차에서 그쳐야 했던 범행을 2차 3차로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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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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