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가습기 살균제 참사 다룬 영화 '공기살인'과 일상 속 독성 물질 알아보기

4월 22일 개봉 예정인 영화 '공기 살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 '균'을 원작으로 한다. 사랑하는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원인 모를 기침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내 역시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주인공은 뒤늦게 이 비극의 원인이 겨울철마다 무심코 사용해 오던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제품 사용자는 350만명 이상, 건강 피해 경험자는 50만명으로 추산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생활용품에 포함된 화학 물질 남용으로 벌어진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난 사건으로 언급된다. 가습기 물때와 곰팡이를 제거할 목적으로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정부가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기까지 10여년간 1000만 통가량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봄, 서울 대형 병원 소아과를 중심으로 공통의 질병 기전을 보이는 원인 미상의 폐 손상 환자 사례가 수집되었으나 당시 임상 현장에서는 바이러스가 아닌 화학 물질, 그것도 생활용품에 포함된 화학 물질에 의한 피해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1년 봄, 원인 미상의 급성 간질성 폐렴 사례가 또 다시 포착되면서 원인 모를 폐 질환의 원인이 밝혀졌으나 독성 물질에 노출된 여파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그 피해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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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개봉 예정인 공기살인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룬 영화다. (출처: TCO(주)더콘텐츠온)

◇코로나19 생활 방역 물질, 잘못 쓰면 '독'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화학제품 사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하는 일상 속 화학 물질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소량으로 사용할 때는 안전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해 도리어 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발표된 독성학 연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생활필수품이 된 손소독제와 살균제 역시 이러한 사례의 일부로 본다. 지난 3월,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사용되는 살균소독제의 성분인 염화벤잘코늄에 주목, 사람과 동물이 해당 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 염증과 조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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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방역이 생활화되면서 손 소독제와 살균제 등이 필수품이 됐다. (출처: Shutterstock)

대표적인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인 염화벤잘코늄은 과산화수소나 에탄올 소독제와 달리 상처 부위에 자극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손소독제, 코 세정제, 항균 티슈, 수술용 도구 소독제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연구팀은 염화벤잘코늄에 노출된 실험동물이 생존하는 농도(Lethal Dose, LD)와 반복 노출 정도에 따라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와 그 피해에 관한 기전을 살폈다.

14일간 0.005%, 0.01%의 염화벤잘코늄에 2일 간격으로 총 5회 노출된 암컷 쥐는 생존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28일간 각각 0.005%, 0.001%, 0.01%의 염화벤잘코늄에 주 1회씩 총 4회 노출된 암컷·수컷 쥐 그룹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0.01% 농도로 노출된 쥐의 폐 조직에서 만성 염증이 발견된 것이다. 염증이 생긴 쥐들은 세포 내 구조가 취약해 세포가 잘 떨어져 나갔고 폐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케모카인·사이토카인 등을 방출하는 기능이 손상됐다. 쥐의 성별에 따라 백혈구 세포의 변화가 다르게 감지되기도 했다. 암컷 쥐에서는 백혈구의 단핵구와 호산구의 비율이 증가한 한편, 수컷 쥐에서는 백혈구 세포 수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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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벤잘코늄에 오래 노출된 쥐의 세포에서 세포내 기관이 세포 밖으로 나오는 현상이 관찰됐다. (출처: 경희대학교)

◇생활 화학제품, 편리함만큼 안전성 보장될까

매년 봄마다 찾아오는 미세먼지, 최근 몇 년 사이 외출을 막은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우리는 생활공간 바깥의 유해 물질을 인지하고 이를 차단 혹은 제거하는 제품을 쓴다. 특히 아이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은 건장한 성인이 사는 집보다 살균·소독 제품을 더 자주, 더 많이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를 이끈 박은정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대대적으로 시행된 분무 소독에서 화학 물질의 위험을 고려했다고 전한다. 염화벤잘코늄은 햇빛에 의해 광분해 반응이 일어나더라도 그 반감기가 일주일 가까이 되고, 흙과의 결합력이 강한 성질을 띤다. 해당 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분무기나 스프레이로 뿌렸을 때 지표면에 오래 달라붙거나 먼지와 함께 공기 중에 떠다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어떨까? 사람들은 바르는 약은 피부로, 먹는 약은 경구로 임상시험을 하듯이 분무형 제품도 호흡기 실험을 거쳤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박 교수의 전언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는 물질을 관리한다. 하지만 나날이 출시되는 신제품의 속도를 따라가 노출 위험을 하나하나 검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염화벤잘코늄 외에 살균·소독 용도로 쓰이는 다른 여러 화학 물질도 농도와 노출 정도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가령 표백제로 사용되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살균 효과가 좋고 운송과 저장이 안정적이나 농도를 과다하게 오래 노출할 경우 피부가 상한다. 다이에탄올아민이라는 물질은 장기 노출될 시 간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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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제품을 쓸 때는 반드시 용법과 용량을 지켜 사용해야 한다. (출처: Shutterstock)

화학제품이 주는 편리함은 그 이면의 장기적인 위험을 고려하지 못 하게 한다. 박은정 교수는 생활 화학제품을 쓸 때 최소한 더 큰 효과를 볼 생각으로 용법과 용량을 임의로 달리하는 일만은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개인의 주의와 기업의 책임, 사회적 규제가 동시에 작동할 때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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