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칼럼]빅테크 규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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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일까. 최근 글로벌시장에선 잘나가던 빅테크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디지털시장법'(DMA)에 합의했고, 미국도 지난 1월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안'의 상원 법사위 통과로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2020년부터 규제 강도를 높여서 알리바바, 텐센트 등 내노라하는 빅테크들의 수난시대라 말할 정도다.

빅테크를 규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모두 초대형 빅테크들의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고 타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EU의 디지털시장법은 빅테크들이 자사의 특정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요구할 수 없고, 경쟁사 서비스보다 우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미국 법사위의 법안도 빅테크가 자사 서비스를 경쟁사 비교해 우선 노출해 주거나 플랫폼 혜택 부여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각각 다른 것 같다. EU는 시가총액 750억유로(약 100조5000억원), 연 매출액 75억유로 이상의 기업 대상이기 때문에 주 타깃은 유럽 빅테크가 아니라 이른바 GAFA(구글, 아마존, 최근 메타로 개명한 페이스북, 애플)로 대변되는 미국 빅테크들이다. 사실 유럽은 미국에 대항할 만한 초대형 빅테크가 없다. 개인정보보호를 너무 앞세우다 보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빅테크를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GAFA에 안방자리를 내줬다는 반성에서 개인정보보호법(GDPR)도 개정한 만큼 GAFA를 견제하면서 자체 빅테크를 기르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미국은 빅테크가 소비자나 타기업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단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가 최근엔 자국의 이익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GAFA 같은 초대형 빅테크의 글로벌 파워가 워낙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할 땐 규제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틱톡, 화웨이 등 미국에 진출한 중국 빅테크를 견제하겠단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유럽이나 미국과는 규제의 결과 강도가 사뭇 다르다. 중국은 2020년 알리바바의 엔트파이낸셜 상장을 무기한 연기시켰고, 디디추싱의 미국시장 상장도 폐지할 정도로 규제 강도가 세다. 왜 그럴까. 물론 중국도 소비자나 기업에 대한 불공정요인을 문제 삼고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빅테크의 도전 가능성을 싹부터 잘라 버리겠다는 것이 규제의 가장 중요한 이유인 듯 싶다. 바꿔 말하면 IT 대기업의 데이터 장악에 대한 경계심이 그만큼 크단 뜻이다. 현재와 같은 디지털·모바일 시대엔 모든 의사소통과 의견 수렴이 IT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이 점에서 보면 회원수가 각기 10억, 14억에 달하는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파워는 엄청나다. 게다가 이들 플랫폼의 데이터는 통신, 금융, 유통 등 거의 모든 산업과 소비자 데이터를 망라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활용할 경우 잠재력은 가히 과거 '비밀경찰'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만큼 규율과 통제를 중시하는 중국 공산당으로선 갈수록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가·지역별로 규제의 결과 강도가 다른 것은 빅테크 주가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대표 빅테크 알리바바는 작년 한 해 주가가 반토막으로 곤두박질 쳤지만 미국의 구글과 애플은 각각 65%, 34%나 상승했다. 미국은 규제를 하면서도 빅테크를 통한 경제 활성화와 경쟁력 제고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도 최근 빅테크 규제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타기업에 대한 불공정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는 백분 공감한다. 다만 규제와 함께 빅테크의 경쟁력과 장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운용의 묘를 살리면 어떨까 한다. 빅테크를 통한 신산업 인프라 구축과 중소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및 수출(역직구)을 돕는 창구 역할 등이 대표적 예라 할 만하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ysjung161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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