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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1월 27일 이상수 한국과학원(현 KAIST) 초대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1971년 1월 27일 오전. 한국과학원 설립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국과학원(현 KAIST) 초대 원장에 이상수 원자력청장을 임명했다. 이와 함께 7명의 당연직 이사와 6명의 선임이사도 임명했다. 당연직 이사 7명은 경제기획원 차관, 과학기술처 차관, 문교부 차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장, 국방과학연구소장, 주미 한국과학원 연락조정실장, 주한 USAID 대표 등이다. 선임이사 6명은 안동혁 한양대 교수, 박두병 상공회의소 회장, 권영대 서울대 교수, 정인욱 강원산업 사장, 이양 서울대 공대 교수, 김용완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임명장을 준 후 다과회를 열고 “한국과학원을 한국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산실로 잘 육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사에서 단연 화제는 이상수 초대 원장이었다. 당시 초대 원장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했다. 해외 과학자로는 국내 화학박사 1호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이태규 박사와 한국전자산업 대부로 불리는 김완희 박사가 물망에 올랐다. 이태규 박사는 과학기술처 신설을 국내 처음으로 제안한 과학계 거목이었다. 국내 학자로는 이상수 박사, 안동혁 박사가 유력 후보자로 거론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원장직 제안을 고사했다.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말. “당시 이상수 원장은 40대였습니다. 반면에 다른 분들은 이보다 나이가 휠씬 많았습니다. 신설 기관으로서 할 일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이 박사는 하마평에 오른 학자 가운데 가장 활동적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이를 감안해 김기형 장관이 젊고 활동적인 이 박사를 초대 원장으로 청와대에 추천했습니다.”

이상수 박사는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영국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국내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학 물리학자로서 한국 레이저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 그가 개발한 광분해 옥소레이저나 고출력 이산화탄소 레이저는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화여대 교수, 원자력연구소장, 원자력청장을 역임했다.

이날 부원장 인선은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부원장에 정근모 박사가 최적임자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정 박사는 한국과학원 설립의 제안자이며, 한국에서 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최종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과학원 설립의 모든 과정에 관해 가장 잘 아는 과학자였다. 더욱이 과학원 설립에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는 해너 USAID 처장이 특히 아끼고 신임하는 제자였다.

한국과학원장 인사 발표 일주일 전인 1월 20일.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미국에 있는 정근모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 장관은 이 편지에서 “그동안 한국과학원 설립에 헌신한 정 박사의 노고를 치하한다”면서 “정 박사를 과학원 부원장으로 내정했다”고 통보했다. 김 장관은 “초대 원장에는 이성수 박사를 임명키로 했다”면서 “앞으로 신임 원장과 잘 협의해서 한국과학원이 인재 양성기관으로 무궁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장관은 “어느 기관이나 신설 기관은 어려움이 많음을 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면서 “과학기술처 장관으로서 과학원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면 돕겠으니 한국과학원을 2000년대 세계 일류 이공계 특수대학원으로 육성해 주길 거듭 당부한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김 장관의 편지를 받고 부원장직 수락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당시 그는 미국과학재단과 원자력위원회 지원을 받아 세계 최첨단 플라스마 발생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정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날 때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이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유학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과학기술을 일으켜 부강한 나라를 일궜는지를 알아내 한국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해 주게.”

정 박사는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결심했다. 정 박사는 김 장관에게 부원장직을 수락하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부원장이란 중책을 어떻게 잘 수행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 박사는 일시 귀국해서 2월 23일 부원장직에 취임했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정 박사는 3월 7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과학원 설립을 지원할 주미 연락조정실을 뉴욕공대에 임시 설치하고 원조자금 업무를 진행했다. 한국과학원 초창기의 교수진 구성과 교과 과정 수립, 연구실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획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과학원이 도입할 연구기기 명세서 작성과 절차, 원조자금 차관 협정 체결 등을 8월 말까지 처리했다.

주미 연락조정실 업무를 끝낸 그는 9월 초 부원장 겸 교수 일을 하기 위해 가족과 귀국길에 올랐다. 뉴욕공대 교수직은 휴직했다. 그가 연구했던 최첨단 연구는 다른 교수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과학기술처는 한국과학원은 임원 선임을 끝낸 후 2월 16일 법원에 법인 설립등기를 했다. 이번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법인설립자로 나섰다. 사비 100만원을 과학원에 기부했다. 과학원 설립자로 대통령이 나선 일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창의재단에 이어 세 번째였다.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 의지는 초지일관했다. 정부는 신청서에서 '과학기술원은 국가 산업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 관련 심오한 이론과 실제적인 응용력을 갖춘 영재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법인등기 대리인은 고석윤 변호사였다. 그는 고건 전 총리의 친형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정관도 만들었다. 한국과학원은 설립등기를 끝내고 현판식을 거행했다. 이틀 후인 2월 18일 오전 10시 과학기술처 회의실에서 한국과학원 설립 이사회가 개최됐다. 이사회는 초대 이사장에 안동혁 한양대 교수, 부이사장에 정인욱 강원산업 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등기를 끝낸 한국과학원은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2월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와룡동 국립과학관 4층에 임시사무소를 마련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이상수 원장은 3월 13~26일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닉슨 대통령 과학고문 보좌관인 해프너 박사와 한국과학원 설립을 적극 지원한 해너 USAID 처창 등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원장은 우수 교수진 확보를 위한 활동도 했다.

순조롭던 과학원 설립 추진에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등장했다. 과학원 부지를 놓고 임업계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정부는 애초 과학원 부지로 경기 수원시 근교와 대전시 덕진동 대덕을 염두에 두고 검토했으나 여러 여건을 고려해 서울 동대문구 홍릉 연구단지 내 서울 임업시험장 일대로 부지를 확정했다. 경제기획원과 과학기술처는 합동으로 서울연구개발단지 조성계획을 마련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서울 동대문구 임업시험장 일대를 대단위 연구개발단지로 조성해 이곳에 한국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입주시킨다는 구상이었다.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3월 8일 홍릉 일대를 답사하고 한국과학원 부지로 최종 확정했다. 과학기술처는 이에 따라 산림청에 임야 부지와 수목원관리권 이관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임업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1922년에 설립한 임업시험장은 당시 각종 목본류, 초본류 등을 보유한 국내 하나뿐인 산림자원의 보고(寶庫)였다. 국내 한국식물학회, 한국식물보존학회, 한국육종학회 등 6개 학회는 공동 명의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들 학회는 그동안 애써 조성한 귀중한 식물 자원을 훼손한다며 연구단지 조성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 최초 임학박사로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한국 임학의 대부이자 산림녹화 선구자인 현신규 서울대 농대 교수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과학기술처는 당장 발등의 불인 임업계의 반발부터 해결해야 했다. 권원기 전 과학기술처 차관(당시 인력담당관)의 회고. “김기형 장관 지시로 임학계 대부인 현(신규) 교수를 장관실로 초청해 장관이 직접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현 교수는 김 장관의 간곡한 설득에도 학자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현 교수는 '내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그동안 수십 년 공들여 조성한 산림자원의 보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셨어요.” 문제는 과학기술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청와대가 나서서 부지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을 거쳐 한국과학원은 임업시험장 부지에 둥지를 틀게 됐다. 세상일치고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것은 없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