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퓨처로그] 정녕 빌런의 길을 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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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논설위원실장

미국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 4년 체류 제한' 조항을 관보에 개제함으로써 정식 행정 절차에 들어갔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180만여명, 우리나라 2만여명 유학생은 앞으로 4년 넘게 미국에서 학업을 하려면 4년 뒤 엄격한 심사를 받아 미 이민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 세계의 엘리트 지성을 빨아들이며 학문의 자유와 혁신의 용광로 역할을 했던 미국이 스스로 미래로가는 빗장을 걸어 잠그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250년간 지구 번영과 인류 기술 진보의 역사는 전쟁과 기아의 참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학문과 연구의 자유, 그리고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은 포용과 개방적인 '섞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은 바로 그 개방성의 최대 수혜자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어떻게 번영을 누려왔고, 혁신을 일궈왔는지 그 역사적 배경마저 스스로 백지화시키겠다는 오만과 독선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단지 한 국가의 쇠퇴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퇴보를 재촉하는 신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리더의 변심과 오만 탓에, 국제 사회의 신뢰나 상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조치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20% 징수 선언이 아까웠던지 이란과 평화협정이 무색하게 전쟁은 다시 격화되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경기 중 아무리 개최국이라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레드카드 번복을 종용하며 스포츠 정신마저 훼손했다. 집권자 친위 조직처럼 변해버린 이민세관집행국(ICE)이 멕시코인 미국 시민을 오인 사살하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지표상으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 리더 국가다. 지난 2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강대 순위'에서 미국은 경제 규모, 군사력, 기술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역시 반도체와 첨단 연구개발(R&D) 투자를 무기로 세계 6위라는 경이로운 도약을 이뤄내며 혁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표 이면 생태계는 급변하고 있다. 유엔(UN)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GII)' 최신(2024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스위스, 스웨덴에 이어 3위에 머물렀으며,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대 혁신국에 진입하며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특허 출원의 약 25%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연구개발(R&D) 투자국 부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중국과의 경쟁을 인류의 진보를 위한 동력으로 삼는 대신, 자국 우선주의라는 이익 장벽 안에 가두고 폐쇄적인 고립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기술 진보는 어느 한 나라의 독점적 폐쇄성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을 서로의 혁신을 자극하는 '인류를 위한 순작용'으로 전환하려는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이다. 경쟁이 배타적 차단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순간, 전 세계 R&D 성장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둔화하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성장 기반이자 강점이었던 개방성을 상실한다면, 인류에게는 기술적 퇴보와 국가·인종 간 노골적인 차별, 그리고 극단적인 격차만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영웅서사'를 중시한다. 지금이라도 자국내 지성과 민주적 목소리를 모아 스스로 빌런으로 가는 탈주를 막아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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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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