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1인 가구 시대와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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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성큼 다가왔다. 공직선거에 어떤 정책과 공약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몇 가지 고민 가운데 하나가 1인 가구이다. 생활 밀착형 복지 공약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지방선거에서 특히 그렇다.

1인 가구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도래했고, 익숙한 사실이다. 새삼 놀라는 것은 증가 속도다. 통계청의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5년 27.2%에서 2018년까지 3년 동안 매년 전년 대비 0.7%포인트(p) 늘다가 2019년에는 0.9%p 상승하더니 코로나 원년인 2020년에는 1.5%p나 증가했다. 그래서 전체 가구의 31.7%가 1인 가구다. 더 놀랄 만한 통계도 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1년 3분기에 1인 가구 비율은 무려 40.1%에 달했다. 시계를 10년 단위로 확장해서 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1990년에 9%였다. 인류사를 통틀어 이렇게 압축적인 핵가족화의 유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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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단위 복지제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성이 여성 배우자와 자녀들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회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는 베버리지 보고서의 작성자 윌리엄 베버리지는 남성의 임금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2명의 성인과 어린이 1명의 경제적 필요성을 충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20세기 복지국가와 조세제도가 개인이 아니라 가구를 단위로 설계된 배경이자 기원은 완전고용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다.

유럽의 맥락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세계대전 전후 부흥기를 거치면서 해체되고 남성 전일제와 여성 시간제의 성별노동 분업이 자리 잡았다. 시차를 둘 뿐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는 이러한 성별분업 맞벌이 모델조차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에 맞춰 고용과 복지, 금융 지원 등의 영역에서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구 단위 복지 시스템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급여 수급 자격의 기준이 되는 소득은 가구의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소득세제의 소득공제와 세액공제의 세제 혜택은 부양가족이 있을수록 유리하게 작동되도록 했다.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생계비가 더 많이 드는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반대로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해서 주거, 음식 등 비용이 더 많이 드는 1인 가구주의 사정은 세제에 반영되지 않는다.

생활 밀착형 복지로 들어가면 1인 가구의 불리함은 뚜렷해진다. 부양가족 수에 따른 가점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에서 1인 가구에 차별적이다. 일정한 연령 이하의 단독 세대주는 전세자금대출 등 정책자금 대출에서 큰 장벽을 만난다. 통계청 1인 가구 통계는 2020년 1인 가구의 주거비 지출이 전체 지출의 19.5%로 전체 가구의 평균 11.9%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거급여를 포함한 복지는 이를 감안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안전 등의 이유로 남성보다 주거비 지출이 높은데 주거급여는 이러한 젠더 특수성에 대해 끈질기게 무심하다.

1인 가구 전성시대는 기존 복지와 대조적으로 기본소득의 핵심적 특성인 '개별성'을 돋보이게 한다. 기본소득이 공적부조를 대체하게 되면 1인 가구에 대한 복지 차별은 상당히 많이 사라질 것이다. 역진적 성격이 농후함에도 수십 년 동안 요지부동으로 남아 있는 세제의 각종 비과세·감면제도 정비의 필요성도 새롭게 사회적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1인 가구 시대에 기본소득이 대안이라는 간단명료한 결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면적인 기본소득의 시행 이전에도 1인 가구 시대에 대처하는 복지 시스템의 정비는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제를 거론하기 전에 1인 가구 시대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관점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다.

사회경제정책은 대체로 1인 가구를 인구경제학의 시각에서 부정적인 현상으로 바라보고 혼인과 출산 장려에 무게 중심을 뒀다. 지자체 사이에 출산 장려금 100만원, 200만원 하는 식의 정책 경쟁을 낳기도 했다. 이러한 접근은 철저하게 실패해서 한국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7년째 OECD 꼴찌를 이어 오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논점은 인구경제학적 시각에서 출산율을 높이려는 접근이 1인 가구 시대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1인 가구의 급증을 더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현재의 극단적인 비혼 및 저출산이 평화로운 균형 상태가 아니라 여성과 청년들의 정치적 파업에 가깝다는 관점 모두를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태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기본소득이 복지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기 전 단계에서도 1인 가구 시대를 대비하는 몇 가지 시급한 정책 과제가 시야에 들어온다.

우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요건을 모든 급여에 대해 즉각 폐지해야 한다. 이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에 매우 중요하다. 기본소득의 본격적인 시행 이전에 연령대별 수당을 확대하는 것도 절실하다. 경기도에서 만 24세 청년에게 연 100만원으로 시행한 청년기본소득을 지급액과 연령대 범위를 넓혀 전국 단위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아동수당을 아동·청소년수당으로 확대 개편할 필요도 크다. 캐나다, 덴마크 등 OECD 19개국이 만 17세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특별히 중요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넓게 형성된 정책으로 생활동반자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동반자 구성원 간 처지와 형편에 따라 직장 가입 의료보험의 피부양자 혜택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역설적이게도 1인 가구에 대해 적극적인 복지 시스템이 갖춰진 사회야말로 혼인과 출산이 다시금 사회경제적 균형을 이룬 사회일 것이며, 기본소득은 그러한 사회의 정책적 인프라로 기능할 것이다.

○…용혜인 의원은 제21대 국회의원이자 기본소득당의 원내대표다.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열망 하나로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국민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일당백' 하는 국회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기본소득과 관련해 △기본소득 공론화법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을 대표 발의하며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의정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또 출산 이후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대표 발의하며 임신, 출산, 육아, 돌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의정 활동도 이어 가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hello@yonghyei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