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회] 신기술 선도·사회 통합 위한 국가표준정책 방향

#최근 세계 경제와 산업은 대전환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중심으로 한 국가 및 기업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 융합은 기존 산업구조를 디지털 기반 제품 및 서비스 확대 등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또 기술패권은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세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 요인으로 부상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강경한 대(對)중국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중국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 아래 기술자립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미·중 양국은 인공지능(AI), 양자정보과학, 나노기술 등 미래 산업의 첨단 원천기술 강화를 위한 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국가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규제 혁신과 표준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또 양극화에 의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도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기술 발전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른 표준 기반 인증과 안전기준 등 제품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전자신문은 4차 산업혁명 기술 확산과 기술패권 경쟁 심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제품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표준정책의 필요성과 현재의 표준정책 진단, 그리고 정책 제언을 듣는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미래 사회의 룰 세터로서 표준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는 이번 좌담회는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맞춰 서면으로 진행됐다.

-21세기 초강대국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또 다양한 산업에서 '룰 세터(rule-setter)'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에 따라 '표준'을 자국시장 진입장벽 등과 같은 정책의 도구로 활용하며, 국제표준화 기구에서는 리더십 확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기술패권 경쟁이 우리나라 산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며 기술패권 경쟁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표준 관점의 방안은 무엇인가. 또 국제통상환경에서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기술장벽에 대한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어떻게 준비가 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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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중 통상분쟁이 기술패권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기술표준 전략은 통상정책은 물론 경제안보전략의 핵심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정책적으로 전략산업이나 첨단 기술로 지목한 분야에서는 무역과 투자가 급속하게 디커플링 되는데, 이에 따라 우리의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독자적인 기술표준체계 구축이 가속화되는 점은 유의할 부분이다. 또 기술표준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서방 시스템과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참여국들 간 체계의 괴리 현상은 국제통신연합(ITU)에서 극명하게 관찰된다. 최근 확산되는 다양한 플랫폼 사업 등 디지털 기술 전반에 기술표준이 분리되는 현상이 확산되는데 해외 수출의 의존성이 큰 우리 산업계가 면밀하게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한-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에서 디지털표준 조항을 신설하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본격적인 역량 제고를 통해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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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중 기술패권경쟁에서 보듯 기술표준은 지정학 질서의 재정립을 위한 전략 차원으로 올라섰다. 작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6G 등 차세대 이동통신기술 분야에 있어서 표준화 협력이 명시됐다. 미·중 경쟁은 한마디로 글로벌 규범과 룰 제정을 둘러싼 경쟁이다. 국제표준화는 글로벌 룰 세팅에서 한 축이다. 표준화는 무역과 상호운용성을 촉진하기 위한 기본적 도구다. 미·중 경쟁으로 인해 글로벌 표준화 시스템이 분절화되면 무역과 혁신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이런 일이 없도록 가치를 공유하는 EU, 영국, 호주, 일본 등과 협력해 다자주의를 통한 기존 규칙과 룰의 수호 내지는 신흥기술 분야에서는 글로벌 룰 세터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 공약에 '유럽국가들과 국제규범 확립을 위한 가치외교 파트너십 구축'으로 표현돼 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 구축이 기대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술 융합과 그에 따른 산업의 재편을 불러오고 있다. 기존 산업과 서비스에 융합이 되거나 여러 분야 신기술과 결합돼 나타나는 신산업은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이 되며 경제 및 산업정책도 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정책의 중요한 도구인 표준 관점에서 국가의 신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과 방안은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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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AI는 자율주행자동차, 지능형 로봇, 스마트공장 등 제조업 융합분야와 지능형 교육, 핀테크 등 지능형 서비스 분야에 많은 활용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며 표준을 확보해야 세계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AI 응용 분야별로 기업 중심의 정부, 대학 간 표준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언어, 시각, 감성, 공간 등 인지 분야는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기술 분야인데,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이 맡아서 핵심 기술의 표준안 확보 노력을 담당해야 한다. 또 기업은 선행 연구개발(R&D)과 제품개발 과정에서 표준 활동 및 특허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표준안의 핵심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나, 이를 국제표준안으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표준화 기구에 영향력 있는 임원 수도 중요한데, 표준화 전문인력도 양과 질적으로 모두 양성해야 한다.

-표준은 사회적 통합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으며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통합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또 안전기준은 표준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데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안전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정부의 표준정책은 이런 이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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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수(한국표준협회 회장)=사회적 배려와 통합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은 유럽의 사회 통합을 위한 기준으로 표준을 규제의 '대체재'이자 '보완재'로 활용하는 신접근전략(New Approach)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국민소득 3만달러 사회 통합의 기준으로 EU와 같이 '딱딱한 규제' 대신 '부드러운 표준'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노인요양·보육·보건·보험 등 사회적 서비스에 표준·인증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 확산에는 무엇보다 관련 부처가 규제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표준을 자율적이고 품질향상 수단으로 삼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표준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준협회도 이를 위해 관계 부처와 협의해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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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숙(소비자정책연구소 대표·ISO 소비자정책위원회(COPOLCO) 부의장)=표준정책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달성을 위한 국가전략이자 사회적 문제 해결과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정책 차원에서 접근돼야 한다. 표준정책은 제품안전을 포함한 생활·사회안전서비스 표준화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국민참여형 표준체계를 통해 추진돼야 한다. 디지털경제 시대의 데이터 진위성과 신뢰성, 개인정보보호 이슈는 소비자의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안전을 동시에 위협하며 새로운 취약층을 만들고 취약층을 더욱 취약하게 하는 가장 심각한 소비자문제다. AI, 사물인터넷(IoT) 최종사용자인 소비자 관점에서 디지털안전이 설계되도록 하는 등 '국민참여형 표준을 통한 디지털경제시대 소비자문제 해결'은 가장 효과적인 소비자정책 전략인 셈이다.

-기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지원책에 항상 1순위로 올라오는 것이 기술규제 완화나 철폐이지만 기술규제 총량은 항상 증가하고 있다. 기술규제는 표준의 한 부분이다. 표준정책 관점에서 기술규제 혁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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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구(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IEC 이사)=우리나라는 현재 27개 부처에서 2505종의 기술규제, 211개 인증을 운영 중이며 안전·환경·건강 등의 이유로 기술규제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로 '규제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과도한 기술규제는 행정 목적 달성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기업 경쟁력 저하의 요인으로 혁신경제로의 전환에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기술규정과 표준의 부합화를 통한 국제기준의 규제시스템 도입, 오래된 법정인증의 민간인증으로 전환, 지난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변화된 환경에 맞는 기술규제인지를 원점에서 검토하는 등 과감한 기술규제 대응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기술규제 혁신의지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개별 부처의 소극적 대응을 총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에 기반한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국의 국가표준체계는 그동안 2만여 종의 국가표준(KS)을 제정·관리해 왔으며, 국제표준화 활동이 세계 10권으로 발돋움했으나, 현재 범부처 참여형 국가표준은 기대하는 성과는 내지 못하고 분산된 운영체계로 인해 국가 미래산업 기반구조로서 일관성 있는 표준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표준 거버넌스 혁신방안은 무엇이 있나.

◇이희진(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현재 분산된 표준 거버넌스는 글로벌 룰 세터가 된다는 관점에서도 약점이 있다. 최근 기술패권경쟁의 전개를 보면 경제, 안보, 외교 등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심지어 산업, 시장 중심의 표준정책을 편다는 미국에서도 국제표준화에서 연방 정부의 참여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도 정부도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표준 거버넌스를 통합적으로 재설계하고 글로벌 룰 메이킹에 참여해 주도하기 위해서는 범부처 차원의 통합적 지원이 필요하다. 국제표준화 주도는 표준 관련 엔지니어들만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룰 세터'라는 구호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글로벌 룰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한 어젠다 설정이 필요하다.

◇강병구(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IEC 이사)=제품을 중심으로 진화한 표준은 이제 융·복합 신산업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회적 통합의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기술이전 및 진흥법'에 따라 정부의 표준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중국은 표준화기관의 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중국 표준(China Standards) 2035'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소속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이 전 부처를 아우르며 범부처 참여형 표준화 시스템을 수행하기에는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표준정책의 혁신적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하다. 표준정책은 특정 부서 업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표준에 특화된 독립적인 위상을 갖춘 기관이 주도를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어정쩡한 구조는 한국을 이류 산업국가로 머물게 할 것이다.

[공동기획: 표준인증안전학회]

정리=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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