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1970~1980년대에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 즉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한국은 개발연대 이후 우수한 산업정책 덕분에 오늘날 제조 강국이 됐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중후장대형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면서 오늘날 제조 강국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대규모 설비와 장치가 요구되는 중화학공업에 집중하다 보니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가 고착화됐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해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에 그치면서 기업 규모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았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과에도 중소기업 위상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규모에 대한 편견으로 인력, 자금, 판로 면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 활용도가 높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규모에 대한 편견이 완화되고 있어 혁신 역량을 구비한 중소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미래를 뜻하는 단소정한(短小精悍)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작은 것이 정밀하고 세차다'는 뜻의 단소정한은 사기(史記) 가운데 유협열전(遊俠列傳)에 나오는 말로, 외형적으로 크기는 작지만 다부지고 강한 면모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의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개발연대에는 기업 규모가 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면 현재 기업경쟁력은 기술과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세상으로 변모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보편화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의미가 더욱더 무겁게 다가온다. 4차 산업혁명 확산으로 디지털 기술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규모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있다. 공장 크기와 같은 규모보다는 창의적 아이디어, 혁신 기술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가진 기업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또 디지털 기술 도입 및 활용도가 높은 기업들이 새로운 경영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지고 있다.
단소정한에서 말하는 정한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조혁신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오늘날 기업의 제조혁신은 소비자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제조기업에서 서비스화 기업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이뤄지고 있다. 제조업은 제품을 잘 만드는 단계에서 제품에 서비스를 부가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단계로 진화했다.
오늘날 제품은 소비자가 사용하면서 그 가치가 증명된다.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느끼는 가치가 제품의 본질이고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면서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동안 제품은 중소 제조업체에서 만들고 소비자에게 제품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 또는 유통업체가 담당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시됐다. 그러던 것이 공급과잉과 디지털 기술 확산 덕에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맞춤형으로 생산해야 생존할 수 있는 수요자 중심경제로 변모했다. 이제 기업 규모가 아닌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독자적 연구 기반과 혁신 역량을 갖춘 이노비즈 기업과 같은 혁신형 중소기업에는 단소정한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와 AI를 통해 중소기업 제품의 정교함을 높이고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기업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이야말로 단소정한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개별 중소기업의 경쟁력 못지않게 설계·연구개발, 제조, 유통·물류 등 생산과 관련된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간 새로운 협업 활동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 제품은 신뢰 부족으로 시장에서 선택되기 어려웠지만 스마트팩토리 구축으로 생성되는 제조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 이력이 포함된 제품 생산이 가능해지면 소비자 선택과 제품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스마트팩토리가 구축되면 공장 내 자동화 설비가 연결되고, 생산 과정에서 생성되는 제조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이 구현된다면 업체별 품질 이력은 물론 제조원가도 투명하게 공개돼 기업 간 협업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노비즈협회는 스마트팩토리 구축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반 가치사슬 클러스터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클러스터는 장소와 거리라는 물리적 요소가 좌우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면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중소기업 간 업종별 가치사슬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구축된 가치사슬 클러스터에 유통 플랫폼을 연결한다면 새로운 판로 개척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미래는 개별 중소기업의 혁신 역량 강화와 더불어 네트워크 기반의 중소기업 간 협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노비즈 인증기업은 2021년 말 2만개사를 돌파해 우리 경제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과제는 혁신형 중소기업을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디지털 가치사슬 클러스터'를 통해 기업 간 거래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협업모델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단소정한을 실천하기 위한 이노비즈 기업의 대장정을 추진하고자 한다.
임병훈 이노비즈협회장 imceo@innobiz.or.kr
◇임병훈 이노비즈협회장은…
1958년 전남 보성 출신으로, 조선대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텔스타홈멜을 설립하고 인공지능(AI), 스마트팩토리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자동화 장비, 정밀 측정기 생산 등을 하고 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 모범중소기업인상을 수상했고, 2020년부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2월 제10대 이노비즈협회장으로 취임해 협회 발전과 이노비즈 기업 성장을 이끌고 있다.
※ 이노비즈 기업 업종별 현황
자료:이노비즈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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