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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수집, 결합,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을 접목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손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녹록하지 않다. 규제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으로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수집했으나 데이터 품질이 열악해서 새롭게 쌓는 게 효과적이라는 푸념이 나온다. 다른 데이터와 결합하면 관리 기관이 달라 합의가 되지 않거나 근거가 없다. 익명화 처리를 하면 식별성이 낮아져 의미가 퇴색하며, 간신히 결합했으나 업무 영역 특성이 반영된 요인이 태깅돼 있지 않아 유효한 분석을 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AI 적용은 단순한 통계 처리 이상의 의미가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권에서 중금리 대출을 위한 대안 신용평가 모델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중금리 대출 목적은 대부분의 중저 신용자가 활용하는 고금리 금융상품을 중금리로 대환해서 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고자 하는 데 있다. 혜택을 받는 대상은 대기업·중견기업이나 고소득자가 아니라 소상공인·자영업자로 불리는, 선진 자본시장에서 가장 소외된 영역이다.

자본시장은 자본 관점에서 모든 룰이 정해지며, 이율이나 대출 한도 등에서 고신용자에게 유리하고 저신용자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대기업 대출 규모와 이율이 가장 유리하며, 소상공인의 경우 가장 취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종 신용보증 기관에서 한도를 설정해 추가 보증을 제공하지만 보증 목적은 소상공인을 중견기업 및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제공되는 것이다. 신용카드 시장에서 협상력이 우수한 대기업군이 유리한 수수료를 얻도록 협상해 갈 수 있으며, 소상공인 가맹점은 금융당국의 규제 없이는 가장 비싼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스퀘어'라는 스타트업이 등장, 신용카드 시장 수수료를 대기업에서 소상공인까지 균일하게 부여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트위터 공동창업자가 다시 창업한 이 회사는 미국 금융시장을 사회적 측면에서 개선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대형 신용카드 회사와 협상을 벌인 끝에 균일한 수수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새 기술을 적용해 그동안 신용카드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을 대거 결제 시장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소득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최대 피해자며, 생존 한계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이를 뒷받침할 금융은 여전히 중금리 대출을 대상 사업자에게 실효적이지 못하다. 금융기관에서 요구하는 재무 데이터가 과거 2년간 신용정보에 근거하고, 코로나 시국 동안 매출 전표에 기반해서 개인 자산이 많지 않으면 보증이 어려워서 사업 확장은커녕 대출 한도가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유효한 데이터가 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등록한 상품에 소비자가 찜한 대기 물량을 보아도 판매자 가능성과 잠재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만약 금융기관이 대기 매출을 담보로 대출 한도를 늘려 주고 이 자금으로 상품을 추가 매입해서 판매할 수 있다면 잠재성이 성장성으로 전환될 것이다. 데이터는 공개돼 있어 인터넷에서 수집할 수 있으며, 금융기관이 모니터링하면 동적 위험관리가 가능해 중금리 영역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기존 시스템과 금융서비스 구조가 코로나 시국의 최대 피해자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보완이 필요하다. 가장 필요한 것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제대로 된 데이터이며, 데이터가 흘러서 은행 창구 단말에 도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규제의 모호성도 제거하고, 데이터 품질도 높이고, 신용평가 모델로 개선해야 한다. 데이터와 기술로 사회적 기여를 높이고 거버넌스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영역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분야다. 지난 2년간 이들 희생 위에 생존한 우리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영역이 금융 분야가 아닐까 한다. 자본시장에서 금융 논리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 논리가 ESG 측면에서 가동돼야 한계에 도달한 그들에게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kevin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