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상 첫 수상자는 이범순 박사입니다.”
1968년 4월 21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회 과학의날 기념식장. 사회자가 과학기술인상(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대통령상 첫 수상자를 발표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과학기술인상은 과학기술 진흥과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정부가 제정한 당시 최고 권위의 상이었다.
한국 과학자 중 대통령상 수상의 첫 영예를 안은 이 박사는 화학공업 기술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당시 상금은 30만원.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공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당시 그는 국립공업연구소장(현 국가기술표준원)으로 재직했다.
정부는 또 국무총리상 수상자로 이기념 서울대 의대 교수, 과학기술처장관상에 한구동 서울대 약대 학장이 받았다. 본상인 대회장상은 표경조(숙명여대)·이창복(서울대 농대) 교수와 신무성 쌍용양회공업 상무, 진흥상에는 서대석 특허국 심사관과 이영래 국립과학관 연구부장과 정연태 서울대 사대 교수가 받았다.
과학기술처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시상식에 앞서 수상자 선정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분과별로 후보자들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전체 심사위원장은 안동혁 박사(전 상공부 장관)가 맡았다. 심사위원회는 분과 심사와 전체 회의를 거쳐 10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1년 후인 1969년 4월 21일.
제2회 과학의날 기념식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은 나세진 서울대 의대 학장이 받았다. 국무총리상은 이정환 국립지질조사소장(현 한국지잘자원연구원), 과학기술처 장관상은 한창렬 방사선농학연구소 연구관이 각각 수상했다. 본상인 대회장상은 이재곤 규격협회장과 김동준 대한생리학회장이 받았다. 진흥상은 한준택 원자력학회 이사, 허종수 국립수산진흥원 연구관, 박종태 발명가협회 이사, 이문형 충주비료기술연구소장, 오상세 연세대 교수가 받았다.
1975년 3월 14일.
과학기술처는 매년 시상하던 과학기술상을 대한민국과학기술상으로 개편했다. 그동안 시상하던 본상과 진흥상 등을 모두 폐지하고 대신 한 명이던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늘려 △과학상 △기술상 △기능상으로 구분해 시상키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같은 해 4월 15일 열린 과학의날 기념식에서 △과학상에 성좌경 인하대 총장 △기술상에 김명년 서울시지하철본부장 △기능상에 이덕성 한국종합화학 촉탁을 대통령 수상자로 시상했다.
5년 후인 1980년 2월.
과학기술처는 대한민국과학기술상에 봉사상을 추가했다. 같은 해 4월 15일 열린 시상식에서 첫 대통령상 봉사상은 홍종욱 경북대 농대 교수가 수상했다.
2002년 8월.
과학기술부는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을 개편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과총이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과총은 같은 해 8월 29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제정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했다.
과총은 9월 4일 위원회에서 마련한 제정안에 대해 내부 회의를 열고 핵심 사항을 검토한 후 최종안을 과학기술부에 제안했다.
과학기술부는 같은 해 11월 20일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상을 이듬해인 2003년부터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으로 확대 개편한다고 밝혔다. 상금도 국내 최고액인 3억원을 주기로 했다. 이 금액은 현재까지 국내 최고 시상금이다.
당시 이 업무를 총괄한 최석식 전 과학기술부 차관(당시 과학기술정책실장)의 말.
“정부는 과학기술 진흥에 기여한 과학자를 최고로 예우하기 위해 처음에는 상금을 5억원으로 정해 재정 당국과 협의를 했습니다. 당시로는 깜짝 놀랄 액수였습니다. 재정 당국과 줄다리기 끝에 상금을 3억원으로 정했는데 이도 재정 당국이 배려해 준 결과였습니다. 당시 노벨상 상금이 10억원 정도인데 수상자를 3~4명 정도 선정했습니다. 과학한국의 상징인 최고과학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면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수여해야 한다고 판단해 5억원을 주장했던 겁니다. 3억원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살 돈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상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아 수상자가 전액을 받습니다.”
과학기술부는 수상 자격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인물로 국내 업적을 중심으로 하며 △세계적인 연구개발 업적이나 기술혁신으로 국가 발전과 국민 복지증진 향상에 크기 기여하고 △과학기술계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과학기술인으로 정했다.
수상자는 매년 4명 이내로 선정하며, 소속 기관장이나 과학기술단체 등이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했다. 정부는 기초과학과 공학, 약학, 의학 등 분야별 20명 내외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업적이 우수한 과학자를 발굴하도록 했다.
과학기술부는 과총을 기술인상 행사 주관기관으로 지정했다.
수상자 심사는 3차로 나누어 엄정하게 진행했다. 1차 심사는 후보자 전공별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한 심사위원이 후보자 공적을 심사했다. 2차는 1차 심사를 토대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10명 이내 전문가가 심사했다. 3차는 과총 회장이 위촉한 과학기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경륜이 있는 인사 15명 이내의 종합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
과학기술부와 과총은 2003년 제1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첫 수상자로 김진의 서울대 물리대 교수와 김규원 서울대 약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김진의 교수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김규원 교수는 산소 농도 변화에 따른 혈관 생성 원리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부는 같은 해 4월 15일 열린 과학의날 기념식에서 이들에게 대통령상장과 상금 각 3억원을 수여했다.
2004년에는 육덕용 KAIST 교수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선정했다. 당시 황우석 교수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해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그의 연구실은 초특급 보안경비시설로 격상했다.
이듬해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서울대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황 교수를 파면했다. 과기 스타의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과학기술부는 2006년에 제1호 최고과학자 지위도 철회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10월 13일 국무회의를 열고 정부가 황 전 교수에게 수여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에 대한 수상 취소 결정을 16년 만에 내렸다.
과기정통부는 황 전 교수 측에 상장과 상금 반환을 통보했다. 황 전 교수는 상장은 반납하지만 상금은 이미 기부한 상태여서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금 반환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비화한 상태다.
과학기술정통부 관계자의 말.
“상장은 반환받았고 상금 3억원 반환은 현재 사법부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7년부터 시상식을 기존 과학의날에서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 개회식으로 변경했다. 이 대회는 매년 과학기술 분야 산·학·연 과학기술 전문가와 리더들이 모여 국가미래비전과 발전 전략을 논의하고 최신 과학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2021년 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9월 10일 오전 10시부터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연차대회에서 2021년 수상자인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에게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원을 수여했다.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이 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44명이다. 학계 인사가 34명이고 산업계 7명, 연구계 3명이다.
산업계에서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전 KT 회장)과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이현순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