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은 중장기 계획이 중요하다. 21세기 자동차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전략과 정책도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했다.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제너럴모터스(GM)는 전대미문의 파산이라는 고초를 겪었다. 테슬라를 비롯해 신규 기업이 전기동력차산업에 경쟁적으로 진입하자 합종연횡의 구도가 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연기관차 산업 종말을 예견한 듯 전기동력차에 승부수를 던져서 보란 듯이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시장을 일궈 냈다. 유럽연합(EU)은 '디젤 게이트'로 독일 자동차산업이 곤욕을 치르자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전방위 지원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은 자동차 업계가 절치부심하고 '빅 테크'(Big Tech)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혁신을 가속한 것에 힘입어 세계 최고 자율주행차 경쟁력을 확보했다.
미국 정부는 완화했던 연비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자동차 업체 전동화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토요타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늦었지만 전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산업 생태계와 경쟁구조가 변화하자 완성차 업체는 모빌리티솔루션 서비스 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를 포함한 모빌리티 산업에서의 경쟁은 승패가 아닌 생사가 걸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성장세를 이어 갔다. 세계 자동차 수요는 10년 주기로 부침을 거듭해 왔다.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통상 1년이나 2년이면 회복했으나 이번에는 1차 석유파동 이후 가장 긴 3년간 수요 침체를 겪었다. 코로나19와 반도체 파동이 겹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V자 회복을 기대했으나 지난해 수요는 2% 정도 증가에 그쳤다. 2024년에나 사상 최고 판매 물량을 경신할 전망이다.
코로나19는 친환경 자동차 수요를 촉발했으며, 반도체 공급난은 글로벌 가치사슬과 공급망 재편을 촉진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산업 내 투자와 교역구조도 변화할 전망이다. 또 지난해 감소했던 자동차 업계 연구개발(R&D) 투자가 증가하면서 제품, 공정,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구조도 변화가 점쳐진다. 자동차 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력과 기술이 필요한데 국내외 현황을 통계를 통해 비교하면 우리 자동차 업체 추동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기동력·자율주행차(미래차)의 차질 없는 개발과 양산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SW)가 자동차 성능과 소비자 경험에 영향을 주는 'SW 정의' 자동차로의 전환을 병행해야 한다. 매킨지 컨설팅은 차량용 SW와 전기전자(전장) 부품 수요가 2020년 2380억달러에서 2030년 4690억달러로 연평균 7%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자동차가 SW로 구동하고 관련 전장 부품 수요가 증가하자 미래차 관련 업체는 전문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자동차산업 엔지니어는 독일 12만6400명, 미국 11만명, 우리나라 4만명 정도다. 친환경자동차 관련 인력은 한국이 약 5만명 수준이나 미국은 26만4000명에 이른다. 차량용 SW 인력은 미국이 최소 2만8000명인 것으로 추정되나 우리나라는 1000명에도 못 미친다. 자동차 생산 규모를 고려할 때 국내 자동차 업계의 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이처럼 자동차 엔지니어와 SW 인력이 부족하자 몸값이 치솟아 자동차 업체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한편 EU 집행위가 매년 조사하는 세계 2500대 R&D 투자기업에 등재된 자동차 업체는 2020년 151개로 전년 대비 1개 감소했다. 완성차 브랜드 보유국가인 우리나라,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와 미국 등재 기업 수가 1개씩 감소한 반면에 프랑스는 1개가 증가했고, 나머지 국가는 변동이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익성 저하로 인해 151개사 R&D 투자액은 1250억480만유로로 전년 대비 5.9% 감소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을 제외하고 모두 줄었다. 중국이 전년 대비 9.7% 증가한 반면 미국 12.2%, 독일 4.7%, 일본 7.0%, 우리나라 2.8% 감소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을 나타내는 집약도 평균은 5.2%로 전년 4.8%에 비해서는 0.4%포인트(P) 증가했다. 국가별로 중국이 3.9%에서 4.1%, 프랑스는 5.9%에서 6.3%, 독일은 6.1%에서 6.5%, 일본은 4.5%에서 4.9%, 미국은 4.5%에서 4.9%로 증가했는데 우리나라는 2.77%에서 2.81%로 가장 낮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자동차 업체의 R&D 투자 총액이 감소했지만 집약도가 증가한 것은 수요 침체에도 업체들이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산업 후발국으로서 세계 5위 수준의 내연기관차 경쟁력을 확보했다. 전기동력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 리서치는 현대차와 미국 앱티브의 합작사인 모셔널을 세계 6위 자율주행차 기술 경쟁력 보유 기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아직 국내 부품업체 미래차 준비도는 다양한 설문 조사를 종합해 볼 때 20~44%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94%와 비교할 때 테슬라의 약진과 빅 3의 조기 회생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금융위기를 지렛대 삼아 '제3 도약기'에 진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장기 성장 둔화기에 놓여 있다. 2015년까지 유지되던 현대차·기아 성장세가 꺾이고 외국계 3사 판매 부진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급업계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으나 업종과 품목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미래 모빌리티 산업으로 차질 없이 전환하려면 중장기 종합발전 계획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설문조사 결과에 의존해 다양한 전략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장의 시름은 깊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표1〉2020년 주요국 자동차업체의 혁신 현황 (단위:개, 백만유로, %)
* 출처 : EU, 인더스트리얼 R&D 인베스트 스코어보드 2021
※ ( ) 안은 완성차업체 수와 집약도
〈표2〉 국내 자동차산업 동향 (단위:대)
*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 ※2021년은 추정치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hglee@katech.re.kr
〈필자소개〉이항구 교수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 근무하며 자동차 산업연구를 담당했다. 2019년 정년 퇴직 이후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결제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