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하순 어느 날 과학기술처는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이하 과총)가 보낸 건의서를 접수했다. 과학기술처 발족일을 기념하고 범국민 과학화 운동의 하나로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제정하자는 건의였다. 김형기 과학기술처 장관은 과총 건의 내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론인 '과학을 생활화하는 국민이 돼야 한다'와 부합했고, 정부가 추진하는 범국민 과학화 운동에 딱 들어맞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처는 곧바로 과학의 날 제정 절차에 착수했다. 같은 해 3월 29일 국무회의에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자는 안건을 제출했다. 국무회의는 이날 과학기술처의 과학의 날 제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같은 해 4월 8일 총리령 58호로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제정한다고 공포했다. 이후 정부는 1973년 3월 30일 총리령을 폐지하고 대통령령(제 6615호)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공포했다. 이 조치로 과학의 날은 국가기념일로 변경됐다. 당시 국가기념일은 체신의 날(4월 22일)과 과학의 날 등 모두 26개였다. 이후 국가기념일은 45개로 늘었다.
제1회 과학의 날 기념식은 1968년 4월 21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기념식 슬로건은 '과학 하는 나라가 되자'였다. 당시 과학기술은 낙후했지만 과학기술 강국을 향한 과학기술계의 염원은 용광로처럼 펄펄 끓었다. 기념식에는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과 이석제 총무처 장관, 김윤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전 교통부 장관), 과학기술자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김기형 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과학의 날은 국민이 과학을 존중하고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과학생활화 결의를 새롭게 다지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과학기술 진흥을 통해 조국 근대화와 경제 발전, 나아가 자주국방을 이룩하자”고 강조했다. 김윤기 과총회장은 대회사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일치단결해 연구개발로 조국 근대화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자들은 일치단결하고 과학기술 진흥에 총력을 다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 △방위과학과 기술 연구로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한다 등 3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또 △과학기술자 처우 개선 △과학기술 연구비 증액 △회계연도와 관계없이 연구사업 지속 등 5개 항의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제2회 과학의 날 기념식은 참석 규모를 확대하고 행사 내용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과학기술처는 2회 기념식부터 과학주간을 마련해 학술 발표회와 세미나, 전시회 등을 개최했다.
과학기술처는 과학의 날 행사에 앞서 4월 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념식 행사 내용을 보고하고 각 부처에 과학기술에 관한 각종 행사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과학기술처는 부처 단독 행사가 아닌 범정부 행사로, 과학 생활화를 범국민 운동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2회 과학의 날 기념식은 1969년 4월 21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시민회관에서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과 박경원 내무부 장관, 이석제 총무처 장관, 김윤기 과총회장, 과학기술자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정일권 국무총리는 이석제 총무처 장관이 대독한 치사를 통해 “정부와 민간기업체, 과학기술자들이 유기적으로 단결해 과학 한국의 터전을 견고하게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은 식사를 통해 “과학의 날은 과학한국의 이정표가 되는 날이고, 민족중흥의 초석을 놓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김윤기 과총 회장은 “1980년대 기술 자립을 위해 우리 실정에 맞는 기술 분야를 중점 개발하는 한편 과학국방도 과학기술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과학기술 개발에 전력을 경주한다 △일치단결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등 3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정부는 기념식에 이어 4월 21일부터 27일까지를 과학주간으로 정하고 각종 과학행사를 개최했다. 산업기술과 품질관리, 과학기술정보관리 등을 주제로 세미나도 주최했다. 또 전기공학, 물리학, 화학 등 13개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강연회를 열었다. 당시 일반인에게 생소한 전자정보처리시스템(EDPS)에 관한 영화를 제작, 국립과학관에서 상영했다. 미래 과학자인 학생들에게 컴퓨터 시대를 앞당겨 보여 준 영화였다.
매년 4월 21일 개최하던 과학의 날은 역대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29일 과학기술부를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3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를 미래창조과학부로 개편했다. 문재인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2017년 7월 26일 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출범시켰다.
이에 정부는 '과학의 날'과 '정보통신의 날'을 '과학·정보통신의 날'로 통합했다. 현재 '과학·정보통신의 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정보방송통신대연합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고 있다. 과학의 날과 정보통신의 날은 출발점과 뿌리가 다르다. 과학의 날은 올해 54회다. 정보통신의 날은 1956년 12월 4일(1884년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 '체신의 날'로 제정했다.
정부는 1972년 4월 22일(1884년 고종황제가 우정총국 개설 명령)로 기념일을 변경했고, 1994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정보통신의 날'로 개정됐다. 정보통신의 날은 올해 66회다. 2021년 기념식은 4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알림2관에서 열린 가운데 유공자를 포상했다. 또 과학주간과 과학의 달을 선포해 다채로운 과학진흥 행사를 열었다.
과학의 날과 관련해 기념일을 변경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2020년 9월 15일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인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5명이 과학의 날 기념일 변경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변재일 의원 등은 과학의 역사적 전통과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세종대왕이 자격루를 국가 표준시계로 반포한 8월 5일로 기념일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념일 변경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찮아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과학의 날 유래는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당시 한국인 과학기술자와 민족주의 인사들이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고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대중 행사를 처음 개최했다. 과학데이를 국내에서 처음 주창한 인물은 김용관 선생이다. 김용관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기술 대중화를 이끈 기수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897년 3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 공대 전신)를 1회로 졸업한 김용관 선생은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1년 동안 동경고등공업학교에서 공부했다. 당시 일본 근대화가 과학기술 생활화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김용관 선생은 귀국 후 1924년 과학대중 운동의 뿌리인 발명학회를 설립했다. 또 1933년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 과학대중화 운동에 속도를 냈다. 과학조선은 1944년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한 과학잡지였다. 김용관 선생은 1934년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기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고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현 YMCA)에서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김억 시인이 작사하고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과학의 노래'를 합창단이 불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노래였다.
김용관 선생은 이어 과학지식보급회도 결성했다. “우리의 모든 생활방법을 과학으로 개선하자. 일체 문화운동의 기초를 과학으로 쌓아 올리자. 다 같이 손잡고 과학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분기하자.”(창립 발기문의 한 구절) 박성래 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저서인 인물과학사에서 “이 일은 말이 과학운동이지 실제는 민족운동이었다”고 밝혔다.
과학데이 활동을 일제는 가만두지 않았다. 일제는 1938년 5회 과학데이를 준비하던 김용관 선생을 체포했다. 과학데이는 막을 내렸고, 과학지식보급회도 해체했다. 1942년에 가석방된 김용관 선생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만주 등지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김용관 선생은 광복 후 서울공업고등학교 교사와 특허청 심사관, 한국발명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과학의 날을 부활시키려 노력했다. 온돌과 관련한 특허를 출원해 10건을 등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용관 선생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67년 9월 작고했다.
한동안 역사 속에 숨어 있던 김용관 선생은 2017년 8월 15일 국민 앞에 다시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김용관 선생을 포함한 독립운동가 5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그들의 넋을 기렸다. 2020년 12월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와 과학기술 발전에 헌신한 김용관 선생을 비롯한 9명의 과학기술인을 2020년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신규 선정했다. 유공자들은 과학한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한 과학기술 리더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