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디폴트옵션 제도 도입과 의의

올해 한·호 수교 60주년을 맞아 최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는 등 향후 경제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9위인 한국과 13위인 호주 양국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좋은 파트너십이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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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 윤영호 정책지원본부장 (사진=금융투자협회)

경제 규모가 비슷하고 생활 여건도 유사한 양국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퇴직연금을 통한 노후준비다. 일찌감치 퇴직연금 제도를 개혁한 호주는 슈퍼애뉴에이션이라는 기금형 제도 기반에서 마이슈퍼라고 불리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통해 퇴직연금을 운용한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7.7%의 수익률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 냈다.

반면에 그동안 디폴트옵션 제도 미비로 제대로 운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5%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최근 사전지정운용제도라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법안이 국회를 통과, 새해 6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그야말로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동안 퇴직연금은 수익률이 고작 1~2%대에 그친 탓인지 '연금'보다는 일시금으로 찾아가는 가입자 비율이 무려 97%에 육박했다. 이들이 찾아가는 평균 금액도 16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일반인에게 디폴트옵션이란 어려운 개념이다. 게다가 디폴트가 부도라는 의미로 널리 쓰여 부정적인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금융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일반인을 위해 고안된 제도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을 장기간 전문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근로자를 위해 근로자가 원할 경우 정부 당국의 인가를 받은 적격 연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를 위해 제공하는 기본 선택권이다.

이번 디폴트옵션 도입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저력을 생각하면 결코 늦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퇴직연금 선진국이라는 호주의 사례를 깊이 연구하면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단기간에 우리 현실에 맞게 정착시킬 수 있다.

디폴트옵션 도입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근로자가 퇴직연금 제도의 진정한 주체로 다시 서게 된다. 이제까지는 근로자가 퇴직연금 수수료를 내면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금융회사의 '봉' 노릇을 했다.

제도 도입 이후에는 근로자가 금융회사를 선택하는 입장이 된다. 디폴트옵션 도입은 금융회사 간 치열한 수익률 경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금융사 가운데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회사를 골라 적격 상품에 가입하고, 표준화된 상품 비교를 통해 손쉽게 운용 성과를 점검할 수 있게 된다.

퇴직연금 제도는 단순히 근로자의 노후 대비를 넘어 국가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으로 퇴직연금에서 잠자고 있는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물밀 듯 들어올 것이다. 활기를 띤 자본시장은 곧 기업과 경제가 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고, 근로자는 경제 성장의 과실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좋은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와 국가경제가 상생하는 생태계라 할 수 있다. 디폴트옵션 도입은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 개혁의 문을 연 열쇠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서 근로자는 든든한 노후를, 국가경제는 기반이 탄탄한 미래를 기대한다.

윤영호 금융투자협회 정책지원본부장 kofiahb@kof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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