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특법' 생색내기에 그칠 건가

결국 용두사미가 되는 형국이다.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 이른바 '반도체특별법'이 이달 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소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가 요구한 주52시간제 탄력 적용과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는 처음부터 빠진 데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도 기획재정부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산업계에서 건의한 사항 가운데 연구개발(R&D) 및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확대만 겨우 남았을 정도다.

특별법은 애초부터 자발적으로 제정한 법도 아니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반도체 자립을 천명하자 부랴부랴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특별법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새 대통령이 백악관 회의에 삼성전자를 불러 놓고 미국 투자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지난 4월 협회를 통해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건의문까지 내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 속에 결국 또 기업이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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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강국이어서 아직 괜찮다는 것인가.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 고문은 최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라도 반도체 기술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자체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나선 가운데 한국이 기술 초격차를 계속 이어 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격차를 벌리지 못하면 따라잡히는 게 상식인데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정원도 늘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같은 협회 인터뷰에서 “미국·중국·유럽 등 글로벌 동향을 보면 반도체를 단순히 돈 버는 산업이 아니라 안보·인프라로 여긴다”면서 “우리는 아직 그런 인식이부족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패권 다툼을 벌이는데 우리는 뭐가 그리 여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빈 수레는 역시 요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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