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규제를 단행한 이후 약 2년의 세월이 지났다. 당시 일본은 의존도 높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로 주요 산업을 압박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는 물론 수입 채널 다변화를 통한 실질적 공급 안정화를 빠르게 달성했다. 일본 수출규제는 전화위복으로 작용, 국민에게 '해보니 되더라'는 자신감이 생기게 해 준 것은 물론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소부장 산업 무역 흑자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9억달러 증가한 627억달러를 기록하며 크게 선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비 부문이 아쉽다. 장비는 소재·부품과 다르게 무역 적자를 기록하며 높은 외산 의존도를 보였다. 장비 부문의 적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1억달러 늘어난 89억달러로 나타났다.
국가기술 경쟁력 확보에 필수인 소부장 가운데 여전히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고 외산 의존도가 높은 분야가 장비다. 산업 현장에서는 국산 장비가 해외 대비 가격우위에 있지만 장기적으로 신뢰성, 고장 발생률, 유지보수비 등 생애 전 주기별 맞춤형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 수많은 소재·부품으로 구성된 장비는 신뢰성 검증 난도가 높은 데다 유지·보수 측면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비의 국가기술 경쟁력을 높일 방법은 무엇일까. 신뢰성·보전성·보전지원성을 통합한 '신인성'을 향상하는 것이 해답이다.
예컨대 사무실에서 흔히 접하는 복합기가 오랫동안 고장 없이 정상으로 작동한다면 신뢰성이 높다는 뜻이다. 인쇄 도중 용지가 걸려서 복합기가 고장 나면 안내서에 따라 기기를 분리하고 낀 용지를 빼면 다시 정상으로 작동한다. 이는 높은 보전성을 의미한다. 고장 발생 시 발빠르게 수리기사가 현장을 방문해서 수리한다면 보전지원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장비는 신뢰성·보전성·보전지원성의 삼박자가 갖춰질 때 기술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장비에 최적화된 맞춤형 기술전략과 정책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장비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개발·생산 단계에서 목표로 삼은 신뢰성 확보 프로세스가 적절하게 설계됐는지를 선행 평가해야 한다. 보전성과 보전지원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을 활용해 고장 발생 시기를 예측하고 사전 조치를 하는 기술을 산업 현장에 확대 도입할 필요도 있다. 또 시의적절하게 인력, 예비품 등 보전 자원을 지원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소재·부품에 국한된 특별조치법을 장비까지 확대했다. 우리나라를 명실상부 '소부장 산업 선도형 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다.
국내 유일의 공공 종합시험인증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도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장비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학·연과 함께 산업의 뿌리인 장비의 실질 경쟁력 향상을 위해 신인성 향상과 사업화 지원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울루 코엘류의 명저 '연금술사'(Alchemist)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할 때 온 우주는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아 도와준다”라는 구절이 있다.
호랑이처럼 앞을 주시하면서, 소처럼 신중히 한 걸음씩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수출하는, 'K-장비' 강국으로 도약하는 꿈이 이뤄지기를 뜻을 모아 소망한다.
박정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부원장·한국신뢰성학회장 jwpark@ktl.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