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4>한미 정상회담 성명 “한국에 과학기술연구소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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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5월 18일 미국 백악관에서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린든 존슨 대통령(오른쪽)이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 관련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1965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이날 오후 2시 55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공식초청으로 열흘 일정의 미국 국빈 방문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이 보내 준 대통령 전용기(보잉 707) 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방미에는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김성은 국방부 장관, 홍종철 공보부 장관, 김종갑 국회국방위원장,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김현철 주미 대사, 문덕주 외무부 차관 등 공식·비공식 수행원 30여명이 동행했다.

박 대통령은 17일 오후 5시(이하 미국 현지시간)와 18일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백악관에서 존슨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박 대통령은 미국 고위 당국자와의 회담에서 한국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경제 자립을 위한 미국의 장기 개발경제 지원, 한국 안보, 주한 미군 지위에 관한 협정체결 문제 등을 협의했다. 방미 첫날인 17일 오전 워싱턴 DC에 도착해 존슨 대통령과 미국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이 연도에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방탄 리무진에 나란히 앉아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백악관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3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워싱턴 DC는 5월 17일을 '박정희 대통령의 날'로 선포했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5시 백악관 존슨 대통령 서재에서 1차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현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이례로 양국 수행원이나 보좌진 없이 통역만 배석한 가운데 40여분 동안 단독 회담했다. 단독 회담이 끝나자 두 정상은 양국 수행원이 기다리는 대기실로 들어와 “우리 두 사람은 거의 모든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 문제는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다. 남은 문제는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을 실무진이 손질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단독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군 불철수와 한국군 장비 현대화, 한국군 월남 파병에 대한 보상 등 현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상은 1차 정상회담 후 백악관 남쪽에 있는 장미 정원을 산책하며 환담했다.

◇존슨 대통령=비행기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박 대통령=비행기라기보다는 큰 호텔 같았습니다.

◇존슨=몇 시간이나 걸렸습니까?

◇박=17시간 걸렸습니다.

◇존슨=앞으로 16시간 정도로 시간을 단축할 비행기를 보내 드릴테니 자주 오십시오.

두 나라 정상은 이튿날인 18일 오후 5시 백악관에서 약 40분 동안 제2차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회담을 끝내고 1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존슨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14개 항에 대해 잘 합의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동성명 14개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내용은 12번이다. “양국 대통령은 학교 교사로서 과거 경력을 상호 상기하고 양국의 모든 수준에서 교육의 필요성과 기회에 관해 협의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공업 기술과 응용과학연구소를 한국에 설치하는 가능성에 대해 한국 공업 과학 및 교육계 지도자와 검토하기 위해 존슨 대통령의 과학 고문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존슨 대통령의 제의를 환영했다. 연구소, 시험소 등은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 기술 지원과 연구조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에서 훈련받은 한국 과학자에게 그들이 연구조사를 계속할 기회를 줄 것이라는 게 존슨 대통령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사범학교 출신 교사로 지낸 공통점이 있었다. 12번 내용은 한국 측이 사전에 준비하지도 않고 미국 측에 제안하지도 않은 안건이었다. 박 대통령을 수행한 한국 측 인사도 이 내용에 관해 전혀 몰랐다. 2차 정상회담 후 발표 초안을 다듬는 막바지에 갑자기 12번 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12번 항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기술고문 파견과 과학기술 교육기관 설치는 존슨 대통령의 특별 제의에 따른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시 국내 최대 관심사는 한국이 어느 정도 규모로 경제 원조를 받느냐와 한국군 월남 파병, 국내 안보 보장 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과학기술 협력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 언론은 없었다.

그러나 동아일보 김진현 경제부 차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예외였다. 당시 회담 해설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치를 위한 기술고문 파견'이라는 내용을 확인하고 이를 동아일보 5월 20일자에 기사화했다. “기술고문 파견과 과학기술 교육기관 설치(12항)는 존슨 대통령의 특별 제의로 삽입한 것이라고 한다. 파격이라면 한국 정부가 전혀 제안도 준비한 적도 없는데도 양국 대통령은 학교 교사 경력을 상기하고 존슨 대통령이 먼저 제의한 공업기술과 응용과학연구소 설치 가능성을 검토할 과학 고문 파견이다.”

국내에 있던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도 이런 내용을 언론이 보도할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 5월 19일 아침 한국에서 조간신문을 읽던 전상근 기술관리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은 공동성명 가운데 12항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전상근 국장은 서둘러 사무실로 출근했다. 김학열 차관실에서 전 국장을 호출했다. “전 국장, 공동성명서를 읽었소?” “네” “12항의 과학기술연구소는 무슨 내용이요?”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통상 두 나라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으로 발표할 안건은 사전에 관련 부처 간 사전 협의를 하는 관계로, 실무자는 관련 성명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전에 그런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전상근 국장도 공동성명 내용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박 대통령은 방미 전인 그해 4월 중순 국내 연구소장을 청와대로 불러 리셉션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회고록 증언이다. “박 대통령이 스웨터를 20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며 자랑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 참 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일만 하겠습니까. 일본은 이미 10억달러어치 전자부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힘이 어디서 생기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술 개발입니다. 이제 우리도 기술 개발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해당 부처 담당 국장도 모르는 내용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간 이유를 아는 이가 없었다. 훗날 존슨 대통령 과학 고문인 도널드 호닉 박사를 통해 그 경위가 알려졌다. 전상근 국장이 호닉 박사에게서 듣고 밝힌 전말은 다음과 같다.

박 대통령의 방미 이전인 5월 초 어느 날 존슨 대통령 과학 고문인 호닉 박사는 백악관 회의실에서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66년도 미국 과학기술 예산을 책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존슨 대통령이 예고 없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대통령이 갑자기 참모 방을 찾는 일은 백악관에서 흔한 일이었다. “대통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한 가지 자문할 일이 있소.” “이달 박정희 한국 대통령이 방미하는 데 그에게 드릴 선물에 관해 좋은 아이디어가 없겠소?”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질문에 호닉 박사는 난감했다. “지금은 당장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곧 연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호닉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에도 참여한 저명한 화학자였다. 그는 명문 브라운대와 프린스턴대 화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은 다른 나라 유학생보다 과학에 대한 자질이 우수했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받고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었다.

호닉 박사는 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교수 두 명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호닉 박사는 자신의 견해를 두 교수에게 설명했다. “한국은 자질이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가 많다. 한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지름길은 과학기술 인재를 효율 높게 활용하는 일이다.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하루빨리 도입, 한국 실정에 맞게 응용해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길을 터 줘야 한다. 그러자면 도입 기술을 이해할 수 있고 능력이 있는 과학기술 집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집단에는 연구소와 대학, 기업체의 과학기술 두뇌를 망라해야 한다. 또 도입 기술을 새로운 경제·사회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자체 연구 활동을 통해 소화하고 개량하는 연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두 교수도 호닉 박사의 이런 견해에 공감했다. 호닉 박사는 한국에 산업기술을 연구할 과학기술연구소를 새로 지어 미국에 와 있는 우수한 한국 과학자들이 귀국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존슨 대통령은 호닉 박사의 이 제안을 흔쾌히 수용했다.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 한국 정부 누구도 이 내용을 알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두 정상의 공동성명 제12항은 한국 과학기술사(史)의 새 지평을 여는 찬란한 희망의 빛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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