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소부장, 첨단산업 강국의 출발점

올해 초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서 보기 드문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한미반도체가 100억원의 성과급을 전 임직원에게 지급한다는 소식이었다. 수요 기업의 투자에 따라 실적 부침이 극심한 중소 장비업체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자사주로 지급된 특별 성과급은 1인당 평균 19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 주가가 연초에 비해 두 배 이상 뛰었으니 직원들의 성과급도 200억원으로 불어난 셈이다.

희소식은 지난달에도 이어졌다. 한미반도체는 그동안 전량 일본 수입에 의존해 온 반도체 패키지 절단 장비 '마이크로 쏘(micro SAW)'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연간 900억원에 이르는 수입 대체 효과는 물론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성과도 거뒀다. 이 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보람이 어떠할지는 쉬이 짐작이 간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직원들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소부장 분야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한미반도체 행보에 주목하는 것은 국내 소부장 업계의 성공사례로 더 널리 알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를 주름잡는 K-소부장 강소업체가 더 많이 출현하고, 산업 생태계에 우수한 인재가 더 많이 모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일본의 치졸한 수출규제 조치가 이뤄진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국내 소부장 생태계는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급격한 변화를 치렀다. 초기에는 혼란 그 자체였지만 민·관의 신속한 대응을 통해 공급망을 안정시켰다.

성과도 만만치 않다. 3대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불화수소의 대일 수입액은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불화폴리이미드는 대체 소재 개발 등을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바뀌었다. 또 소부장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수출규제 이전 31% 수준에서 올해 24%까지 떨어졌다.

소부장 기업 실적과 기업 규모도 급성장했다. 소부장 상장기업들의 올 1분기 매출액은 2019년 1분기와 비교해 20% 증가했다. 상장기업 전체 평균(12.7%)을 크게 웃돈다. 또 2019년 13개에 불과했던 시총 1조원 클럽 소부장 기업은 올해 31개로 늘어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부장 산업을 바라보는 국민 인식의 개선이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소부장 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중은 7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에 유사한 소부장 위기가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기업인들의 응답은 60%를 넘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국민과 기업인들의 마음속에 자신감과 자긍심이 심어졌다는 것이 더욱 큰 성과다.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연대 및 협력, 소부장 하기 좋은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친 결과다.

그렇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소부장 연구개발(R&D)과 사업화는 최소 10여년에 이르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최근 2년간의 성과는 당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물일 수도 있다. 현재의 우호적인 환경과 기회가 계속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가는 금세 예전의 생태계로 돌아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급한 축포를 쏘아 올리기 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더 보강해야 할지를 고민하자. 차세대 소부장 개발 경쟁은 제조업이 유지되는 한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민간의 치열한 노력에 정부 지원을 더해 제2, 제3의 한미반도체 같은 기업이 끊임없이 출현해야 한다. 첨단산업 강국을 지향하는 국가 목표의 출발점은 바로 소재와 부품 그리고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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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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