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민관이 함께하는 국가기술혁신 성공에 미래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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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산업기술 정책 방향 설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정부와 기업 간 협업, 기업 간 협업, 산·학 간 협업은 비약적 혁신을 일궈 내고 있다. 독일은 2010년부터 민간이 주도하는 워킹그룹 중심으로 '인더스트리 4.0' 등 산업기술정책을 주도하고 있으며, 영국은 '섹터 딜'이라는 주요 기업 중심 민관협의체를 통해 투자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민간R&D협의체'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기후변화 대응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기업 간 연결(Connect)과 협업(Collaboration) 목적으로 구성됐다.

과거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민간 기업이 모여 정부 R&D 투자 방향 설정 단계부터 산업계 의견을 반영하는 기업과 정부간 새로운 협업 모델의 시도인 것이다.

그동안 부분적이고 간헐적으로 진행된 민간 의견 수렴이 어느 때보다 대대적이고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경우 업종별 협회나 단체가 세부 과제를 발굴하는가 하면 정부-민간 소통 창구가 마련되고, 기업 간 협의체 결성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간R&D협의체는 국가 R&D 예산 배분 조정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기술혁신본부와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기술혁신전략 수립부터 부처별 세부사업 기획까지 모든 단계에 민간 의견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범 운영되고 있는 탄소중립과 스마트센서 협의체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민관R&D협의체가 기업과 정부의 동반자적 협력 구심점과 중요한 채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R&D협의체의 산업공정 분야에서는 그동안 40여개 참여 기업이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미래 도전 과제를 논의했다. 세계적 탄소중립 기술 개발 경쟁을 기업의 글로벌 경쟁우위 확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발전 등 기간산업의 탄소중립은 기존 공정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수준의 기술 개발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의 상업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기업의 투자 이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기간산업 분야의 탄소중립에 가장 먼저 뒷받침돼야 할 것은 친환경 전기에너지 공급 인프라 구축이다. 기존 탄소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체계에서 친환경 전기에너지 체계로 바뀌지 않으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간산업 분야에서 탄소중립은 달성 자체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소형 모듈형 원전(SMR)도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기저에너지 공급원으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철강 산업의 경우 기존 탄소환원 방식을 수소환원 등 새로운 생산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50년 이상 앞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철강제품의 제조비용 상승과 자동차, 기계, 가전 등 철을 재료로 하는 모든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화학, 시멘트, 발전 등 대부분 기간산업도 모두 이런 고민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산업 간 협업이 가능한 탄소중립 기술 발굴도 협의체의 중요한 의제다. 철강, 석유화학, 발전,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한 슬래그와 이산화탄소를 활용해서 시멘트 제조 공정의 원료물질로 활용하는 기술을 포함해 국가적으로 투자가 시급한 분야에서 총 60여개 연구개발(R&D)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민간R&D협의체는 9월까지 미래 탄소중립 유망 기술과 관련 중장기 R&D 과제를 추가 발굴,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초기 협의체 효용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기업도 공통의 고민과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협력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작지만 참여 기업 간 협력 과제도 구체화된 형태로 제시되는 등 실질적 성과 도출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시도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의 성실한 참여가 전제돼야 하고, 정부는 기업이 제안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파격적 제도 정비와 규제 개선, 국책 과제의 유연한 운영 등 정책적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의 적극적인 활동과 지원에 감사하며, 이런 활동이 단발성이 아니라 오는 2050년을 내다보며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한두 걸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기술 개발의 유사한 출발선에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대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처음으로 시도되는 민간R&D협의체가 탄소중립 기술을 선도하고 산업계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김기수 민간R&D협의체 탄소중립 산업공정혁신분과 위원장·포스코 전무 kisookim@pos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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