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아름다운 봄의 전령이다. 올해 벚꽃은 높은 기온 영향으로 1922년 관측 시작 이래 99년 만에 가장 빠르게 개화했다. 지난 3월이 역대 가장 따뜻한 3월로 기록되면서 그만큼 빠르게 낙화했다. 아름다운 봄을 빠르게 선사하는 감사함과 함께 지구온난화 영향을 피부로 생생하게 느끼게 된 생활의 단편이 막연한 두려움을 들게 한다.
최근 '환경 대 경제'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그 힘을 확연히 잃고 있다. 선진국들의 장기적 저성장 국면과 신흥국 부상, 디지털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역사적으로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성장 한계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웠다. 이를 극복할 새로운 국제 질서와 글로벌 표준도 절실해졌다. 그것이 바로 기후변화대응, 그린정책이다.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 선언' '탄소국경세' 도입으로 환경과 함께 자국 기업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목표다. 미국 존 바이든 행정부도 최근 '탄소 국경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친환경을 연결고리로 삼은 새로운 무역장벽이 곧 출현할 것임을 뜻한다.
무역 정책과 기후 목표를 연계한 그린정책은 새로운 무역 질서로 자리 잡으면서 탄소 집약적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을 친환경 구조로 대전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적용 가능한 탄소중립 기술 확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저서 '균형의 문제'에서 '저비용 백스톱 기술'이라 칭하는 친환경 전환 기술이 다른 정책 대안들과 비교해 최대 80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즉 새로운 기술 개발은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지만 혁신을 위한 최고 방법론이다.
우리 정부도 신속하게 '탄소중립 기술혁신 추진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민간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들과 협력해 업종별 '탄소중립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수립하고 기술 개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탄소중립이 가까운 미래에 기업 생존을 가르는 문제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기업들은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경제성을 입증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된 기술의 타당성을 실효적으로 검증할 대규모 실증사업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 R&D 투자도 이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적 공급이 포함된 정교한 시나리오와 정책 대안이다. 친환경 기술 개발은 탄소중립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예컨대 철강 산업은 환원제로 사용되는 코크스를 대체해서 수소를 이용하는 수소환원제철로 공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수소 공급량과 공급 방법, 가격은 탄소중립 공정 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기업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또 대대적 생산설비 교체를 동반하는 것은 물론 기존 설비 좌초 비용과 새로운 설비 투자자금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설비투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금융이다.
산업 부문의 탄소중립은 산업계 구조 전환 노력과 함께 수소 등 에너지 공급 문제 해결, 기업들의 저탄소 공정 전환 연착륙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대안 마련 및 지원이 절실하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화석연료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점에서 산업 사회 이후 처음으로 맞는 거대한 전환이 될 것이다. 친환경 경제는 위기를 넘어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다. 우리 산업의 퀀텀 도약을 위한 슬기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정부와 기업과 사회, 우리 모두의 결집이 필요하다.
나경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장 khna@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