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친다. 매끈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실내, 여유로운 힘을 지닌 파워트레인과 첨단 장비까지 모든 게 오버 스펙이다. 가격도 독일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준에 근접했다.
제네시스 GV70을 타봤다. 제네시스는 이미지 공개 후 늦어도 두 달이면 출시되는 다른 신차와 달리 석 달 가까이 GV70 최종 품질 점검과 사전 마케팅에 공을 들이며 발표 시기를 늦췄다. 이번 주 실물과 가격을 공개했고, 실제 출고는 새해부터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도 높은 신차를 내놓겠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새해 유럽과 중국 진출을 앞둔 제네시스 입장에서 신차 GV70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올해 제네시스는 G80과 GV80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며 제네시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차로 승부를 펼치기엔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 과거 렉서스나 인피니티 사례처럼 수요가 많은 중형차 시장부터 한 걸음씩 공략해 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 선택이다.
GV70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판매 규모가 큰 중형 SUV 부문에서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 시승을 통해 확인한 GV70은 디자인과 스펙만 놓고 본다면 메르세데스-벤츠 GLC, BMW X3와 견줘도 부족함 없는 상품성을 보여줬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디자인이다. 날개 형상을 딴 커다란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을 콘셉트로 한 쿼드 램프가 제네시스 일원임을 나타낸다. G80과 GV80보다 한 단계 완성도가 높아졌다. 차체 앞과 뒤, 옆 어디서 봐도 비례감이 훌륭하다. 유선형 차체는 운동선수처럼 날씬하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다.
차체 크기는 전장 4715㎜, 전폭 1910㎜, 전고 1630㎜, 축간거리 2875㎜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벤츠 GLC나 BMW X3와 크기를 딱 맞춘 것처럼 흡사한 수치다. 앞과 뒤 어느 좌석에서도 편안하다. 뒷좌석은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무릎 공간과 탑승자 다리와 앞좌석 사이 손바닥을 펼칠 정도로 넉넉하다.
실내로 들어서면 앞서 타본 G80이나 GV80 수준의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운전대와 시트에 사용한 가죽은 수입 플래그십 모델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고 부드럽다. 비행기 날개 조형에서 영감을 받은 실내는 유니크한 타원형 요소를 살렸고 무드 조명도 인상적이다.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중저음을 내는 엔진이 깨어난다. GV70은 가솔린 2.5 터보와 3.5 터보, 디젤 2.2 등 3개의 엔진 라인업을 갖췄는데 시승차는 가솔린 3.5 터보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380마력/5800rpm, 최대토크는 54.0㎏·m/1300~4500rpm을 발휘한다. 구동 방식은 네 바퀴에 고른 힘을 전달하는 AWD를 채택했다.
정숙성은 뛰어나다. 시동이 걸렸는지 계기판을 다시 확인했을 정도다. GV70는 앞유리와 창문에 차음 유리를 적용하고 엔진룸 격벽 구조, 2중 구조 플로어 흡차음 성능을 강화했다. 너무 조용한 탓에 고색 주행에선 타이어가 내는 노면 소음이 크게 들렸다. 타이어는 255/40 R 21인치 미쉐린 제품을 장착했다. 접지력이 우수하지만, 차급을 고려하면 과한 세팅이다. 19인치만 장착해도 충분해 보인다.
고배기량 차량답게 가속을 시작하면 시원스럽게 치고 나간다. 정지 상태에서 100㎞/h 가속 시간은 5.1초다. 도로에서 원하는 만큼 쉽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운전대는 정직한 설정이다. 유격이 거의 없이 운전자 의도대로 차량을 움직일 수 있다.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면 시트가 허리를 조여주고 변속 타이밍을 늦춘다. 스포츠카처럼 가상 엔진 사운드를 출력하는 액티브 사운드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엔진음도 한층 커진다.
승차감도 기대 이상이다. 푹신하고 편안한 느낌이 마치 프리미엄 세단을 타고 있는 듯하다. 방지턱을 넘을 때도 출렁임이 적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정보를 이용해 전방 노면 정보를 미리 인식하고 서스펜션을 제어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첨단 장비도 풍부하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와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운전자 주의 경고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 주요 장비를 기본화해 상품성을 크게 높였다. 차량 내 간편 결제 제네시스 카페이 연동 지문 인증 시스템, 레이더 센서 기반 어드밴스드 후석 승객 알림도 처음 선보이는 신기술이다.
연비가 좋은 편은 아니다. 가솔린 3.5 터보 21인치 타이어 기준 공인 복합 연비는 8.3㎞/ℓ 수준이다. 시승 당일 도심에선 7㎞/ℓ, 고속도로 주행 시 10㎞/ℓ 정도를 달릴 수 있었다. 평소 주행거리가 많다면 가솔린 2.5 터보나 디젤 2.2를 구매하는 게 낫겠다.
가격 경쟁력은 옵션에 따라 달라진다. GV70 가격은 가솔린 2.5 터보 4880만원, 가솔린 3.5 터보 5830만원, 디젤 2.2 5130만원부터다. 기본형을 기준으로 필요한 옵션을 추가 비용을 내고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날 체험한 시승차는 가솔린 3.5 터보에 21인치 휠과 미쉐린 타이어(120만원), 시그니쳐 디자인 컬력션1(170만원), 파퓰러 패키지2(720만원)을 넣어 최종 가격이 7220만원에 달했다. 벤츠 GLC 6840만~7810만원, BMW X3 6410만~8910만원보다 기본 가격은 훨씬 저렴하지만, 풀옵션 기준으로는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