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미지센서, 전력반도체 등 시스템 반도체 생산 주문이 폭증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국내 8인치 파운드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기존 생산 능력보다 2배나 많은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그러나 토종 파운드리 업체 두 곳은 중국 등 주로 해외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마진이 높은 해외 팹리스 제품을 우선 생산하면서 내수 매출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게다가 이들 두 곳의 파운드리 업체는 국내 공급 부족 상황을 해소할 만한 투자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시스템 반도체 재도약을 꿈꾸고 있지만 칩 생산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팹리스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의 파운드리 투자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단순히 국내 팹리스의 공급 부족 해소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물론 고객사의 칩 생산으로 큰 이윤 창출까지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그룹이 이 사업에 뛰어들 수는 없을까. 일각에서는 LG가 그룹 내 유일한 반도체 회사인 실리콘웍스의 계열 분리를 단행하며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그러나 LG그룹의 반도체 DNA는 여전히 남아 있다. LG전자 CTO부문 산하 SIC센터에서는 디지털 TV에 들어가는 핵심 칩셋, 각종 인공지능(AI) 반도체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LG는 과거 반도체 팹 운영 경험까지 있다. 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전자 부품 사업을 고려하면 파운드리 투자가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LG그룹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시절인 1999년 정부의 빅딜 조치로 당시 잘나가던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강제로 넘긴 뼈아픈 과거가 있다. 그러나 미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과거의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전도유망하다.
최근 구광모 회장이 비핵심 사업 매각으로 16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면서 미래 사업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구 회장이 동그란 반도체용 웨이퍼를 미래 먹거리 카드로 꺼내는 모습을 감히 상상해 본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