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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는 다양한 국가와 교역을 적극 모색해 왔다. 그리고 교역을 좀 더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우리가 해외와의 교역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외화 때문이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원과 농산물을 해외로부터 원활히 구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외화가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지만 수출은 우리에게 외화벌이 이상의 기회요인을 가져다줬다. 그중 하나가 많은 창업가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는 점이다. 사실 제조업 분야 창업은 서비스업보다 손쉽게 전개되기 어렵다. 제조는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설비가 요구된다. 또 물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납품해 줄 협력사, 물건을 판매해 줄 협력사 등 다양한 전후방 협력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대부분 창업자는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분야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처럼 우리 경제구도가 고도화됐음에도 서비스 분야에서 창업이 용이한데, 해방 이후 아무런 제조기반이 없었을 당시에는 어떤 의미에선 서비스 분야만이 유일한 창업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립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국내 산업 시스템이 일순간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중요 생필품의 가격이 폭등했고, 전반적인 물가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이때 해방 이후 초기 창업자가 주목한 사업 부분은 무역이다. 당시 무역은 주로 인천항에서 전개됐는데, 중국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한 뒤 되팔아 손쉽게 10배 가까운 이득을 취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생산해 둔 물건을 해당 물건이 필요한 곳에 전달해 주는 유통업, 무역업 등에 종사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제조업이나 여타 서비스업에 진출할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무역이 우리 기업에 가져다준 효과는 더 있다. 다양한 외국산 물건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국내 고객이 또 하나의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흔히 '한국은 글로벌 기업의 무덤'이라 표현한다. 해외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기업도 한국에만 진출하면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퇴출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세계 1, 2위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의 경우 이마트, 롯데마트 등 토종기업에 밀려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 결국 철수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는 각각 포털사이트와 워드프로세스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구글과 MS워드 때문에 자국에서 자체 개발한 포털사이트와 워드프로세스 운영을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만큼은 예외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외에 자국어 문서 편집기(아래아 한글)를 가진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처럼 유달리 우리나라에서 글로벌기업보다 토착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살아남은 이유를 한국지엠(GM) 사장을 역임한 제임스 김은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성향에서 찾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세계 최고 수준의 눈높이를 해외 기업들이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일견 까다로운 고객은 창업에 불리한 환경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해당 제품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동기부여가 돼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크다. 우리 국민이 이처럼 까다로운 소비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역시 전 세계 어느 나라 물건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무역망 덕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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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