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전략분야 27개 과제 집중
고성능·저전력 기술개발 고삐
자동주차·자율주행 시스템
5G 기반 범죄 예측 칩 등 눈길
# 정부가 국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이 본격 닻을 올렸다. 이 사업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반도체 기술, 특히 인공지능(AI) 중심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좌우할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 핵심 기술 개발로 반도체 생태계 균형 발전과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설계, 소자는 물론 장비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챙긴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발표 이후, 상세 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구체 사업 과제와 향후 효과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지난 3일 사업 확정 이후 성공적 사업 추진을 위해 10일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도 출범시켰다. 국내 수요기업과 중소 팹리스 간 시스템 반도체 공동 개발과 협력으로 상용화까지 성과를 창출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업계는 정부 정책이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성능 칩 완성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 지원과 함께 인력 양성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0년간 1조96억원 투입…신시장 선점할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정부는 이번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사업에 올해부터 2029년까지 총 1조96억원 예산을 투입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부터 2026년까지 5216억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9년까지 4880억원을 투자한다. 이 금액은 최근 5년간 국가 연구개발(R&D) 예타 사업 가운데 1조원 규모를 넘은 유일한 사업이다.
정부가 AI로 대표되는 지능형 반도체를 집중 육성하기로 한 이유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과 추론을 하는 인공지능은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 인터넷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며 필수 기능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주변을 인식해 목적지까지 운행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인공지능이 없으면 구현이 불가능하다. 이런 AI 기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AI용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앙처리장치(CPU) 등 기존 연산 프로세서 설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이 개발되는 이유다.
AI 반도체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다. 인텔, 퀄컴, 엔비디아, 자일링스, 삼성, AMD 등 전통의 반도체 기업들은 물론 애플, 미디어텍, 그래프코어 등 신흥 강자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은 2017년 170억달러에서 2025년 650억달러로 4배 가까이 증가할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반도체 시장 흐름에 따라 정부는 경쟁력 있는 미래형 반도체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다.
◇미래차·바이오·IoT가전·로봇·공공 반도체 설계 지원
정부는 미래차, 바이오, IoT가전, 로봇, 공공을 5대 전략 분야로 나눠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나선다.
미래차 분야에서는 운전자 주행 습관을 인지, 판단해 주행을 보조하는 AI 반도체와 주변 사물을 인식해 거리 조정 등 안전운행을 지원하는 반도체 등 10개 과제가 추진된다. 가온칩스, 넥스트칩, 전자기술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올해 총 93억원이 지원된다.
넥스트칩은 2023년까지 자동 발렛 주차를 위한 다중센서 기반의 지능형 어라운드뷰모니터(AVM) 시스템 반도체 개발 과제를 주관한다. 디자인하우스 업체 가온칩스는 텔레칩스 등과 함께 안전기능과 보안기술을 강화한 스마트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기술, NPU와 고성능 CPU를 내장한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한다.
8개 과제에 92억원 예산을 투자하는 IoT 가전 분야도 눈에 띈다. 터치 설계회로(IC) 사업이 주력이었던 지니틱스는 음성인식을 할 수 있는 스마트가전용 반도체 개발에 도전한다.
전자부품연구원이 주관하는 지능형 폐쇄회로카메라(CCTV) 등에 활용될 저전력 AI 반도체 개발 과제도 눈여겨볼 만 하다. 고효율·초저전력 경량 에지 디바이스용 칩 개발을 골자로 하는 이 과제는 지능형 CCTV 등 재난·사고 모니터링 디바이스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밖에 바이오, 로봇, 공공 분야에서도 이색적인 과제가 진행될 계획이다. 한 예로 공공 분야에서 에프와이디는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 범죄자의 생체·위치 정보를 활용한 범죄 징후 예측 칩을 개발한다.
◇대기업과 협력도 추진
업계는 이번 사업으로 환경이 열악했던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와 대기업 간 공동 개발과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정부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을 출범시켜 수요기업, 반도체 대기업,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체 간 가교 역할을 자처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사업단은 팹리스가 수요기업과 함께 칩을 개발하고, 칩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파운드리와 테스트베드 인프라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사업단 출범식에는 현대모비스, 삼천리, SK텔레콤, 한화테크윈 등 수요기업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후원기업 관계자가 정부, 설계업체 관계자들과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MOU 교환 이후 서버용 AI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 AI는 SK텔레콤과 학습·추론이 가능한 서버용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 직접 적용하며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할 예정이다. 로그프레트코리아와 스카이칩스는 삼천리와 함께 누설감지용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해 모니터링 시스템에 실증 적용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 간 협력을 제고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업계 '환영'…꾸준한 지원과 인력 양성 뒷받침 돼야
업계는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이후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인지하고 선제 투자한 것에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의 의견을 반영한 과제가 많고, 무엇보다 수요기업과 반도체 회사 간 적극적 매칭으로 상용화까지 고려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경쟁 환경이 만만치 않은 만큼 기술 개발 및 확보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요 기업에 채택되는 상용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지속적인 투자 지원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 인력 양성 대책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과제 수가 늘어나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과제를 수행할 사람이 없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구용서 단국대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 기업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