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질수록 잠잠해질 거라는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 세계 일일 확진자는 20만명에 육박하며, 지난 6월 27일 1000만명 확진 및 50만명 사망을 넘어서 기세가 더욱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전히 소규모로 집단감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형국이니, 사상 유래없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체제 상징처럼 봉쇄나 제재 없이 난국을 대처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부터 마스크 애플리케이션(앱), 역학조사지원시스템 등 질병관리본부의 리더십은 K-방역으로 구체화됐다. 세계 각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방역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은 물론 의료진의 헌신적인 희생과 아울러 메르스와 신종플루 때의 실패를 딛고 구축된 시스템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19의 활동형태를 보면, 놀라운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최초의 발현이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감에 떨게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것을 보면, 그 위력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데,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코로나 19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면역체계상의 취약한 기저질환자, 노인들을 쉽게 곤경에 빠지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소외받거나 음지에 있는 부분을 정확히 타격하고 있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건강성은 신뢰와 투명성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불평등과 위선, 오만이 가득한 부분이며, 코로나는 이런 취약지점을 타격하고 있는 것을 연일 목격하고 있다.
둘째, 코로나 19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유입된 코로나 19의 유전체와 국내에서 감염되는 유전체가 다르다든지, 최근 베이징에서 발생한 코로나는 이전보다 8배이상 전파력이 강해지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 내면서 생존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완전퇴치는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셋째는 코로나의 전파특성을 보면 은밀하게 퍼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릴라와 같은 행보다. 무증상 감염자 본인도 그렇지만, 확진자를 추적하는 보건당국에서도 무척 당황스러운 부분이다.
넷째는 코로나는 애자일(agile)하다는 점이다. 코로나 19는 인간과 같이 깊은 사고를 하거나 여지를 두는 것이 아니라 확진자와 순간적으로 접촉하더라도 전파되고 전파형태도 비말로만 전파되는 것이 아니고, 금속류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공조시스템을 통해 보다 넓은 지역까지 확산되기도 한다. 인류로서는 공략하기 힘든 적을 만난 셈이다. 코로나 19에 직접 대적할 수도 없고, 현재는 백신개발도 안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로나로부터의 접촉 확률을 낮추는 것 밖에 없다.
코로나19 역학조사지원시스템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스마트시티 기술을 이용해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고 보도된 경우는 있지만 세부 기술과 배경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사실 역학조사지원시스템이 갖춰진 과정을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전망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문명의 길을 살짝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역학조사지원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스마트시티 데이터 허브는 애초 복잡한 도시 내 교통, 에너지, 안전 등 각종 시스템 간 연계와 협력을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서 처리할 목적으로 개발된 일종의 데이터방송국 또는 데이터병원 같은 기능을 하는 종합처리시스템이다. 지난 2018년부터 국가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인 스마트시티 국가혁신성장동력 프로젝트 사업단이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있었다. 올해부터 대구시와 경기도 시흥시에 실증을 통해 본격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대구시에서 갑작스레 코로나19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실증 계획을 다소 변경,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제공하게 된 것이다.
약 3주 동안 소프트웨어(SW)를 추가 개발해 22개 카드사 데이터와 3개 이동통신사 데이터를 동시에 제공 받아서 하루 넘게 걸리던 역학조사를 10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혁신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확진자의 동선추적이 실시간으로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면서 우리나라는 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확보한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에게 쉽게 보이지 않던 전자정부, 지능형교통시스템(ITS)과 U-시티 등 첨단 도시 인프라, 초고속 인터넷 환경, 공공보건 등 공공성을 위해 개인정보 활용이 가능한 법제 정비,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생태계와 신용카드 따위의 금융 네트워크 등 지난 20여년 동안 끊임없이 구축돼 온 이력이 있다.
역학조사지원시스템에 대해 기술이전을 바라는 중남미 등 여러 나라들과 인터뷰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디지털인프라와 시스템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스템을 지원하려해도 중남미를 비롯해 중동, 아시아 국가들에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는 점을 깨닫는다.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는 K-방역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아가 우리나라의 앞선 디지털 환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문명 전파자로서 역사를 일구고 소임을 다해야 할 사명과 운명에 처해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마트시티에서 접하고 있는 동일한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스마트시티에서 핵심은 데이터이며, 얼마나 필요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수집·가공하고 처리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교통·에너지·안전·환경 등 각 영역 간 상호협력이 절실하며, 각 시스템이 연계된 복잡계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운영체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여전히 각자도생에 길들여 있다. 통합 디지털 생태계 조성에서 파편화된 단기 접근을 하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직 협력 체계 못지않게 수평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
또 인공지능(AI) 기술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AI 재료가 되는 양질의 데이터가 우선 확보돼야 한다. 확보된 데이터는 더욱 투명하게 공개되고, 활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오픈 거버넌스가 정립돼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국민이 협조하듯이 디지털 생태계에 국민이 자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이를 위한 법률·제도 뒷받침이 필수로 요구된다. 이를 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순히 K-방역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K-디지털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디지털문 명이 세계 표준이 되는 날도 도래할 것이다. 단기 성과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시스템과 인프라·프로세스를 정의하는 K-디지털 로드맵을 수립하고 체계화해서 실천하는 것도 지금 시점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선점을 위한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기본이다.
조대연 스마트시티 국가혁신성장동력 프로젝트 사업단장 doholcho@kai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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