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2015년 진입 문턱 낮춰
투자자 끌어모아 '편법 투자' 악순환
개방형 사모펀드 유동성 리스크 관리
스트레스 테스트 의무 등 부과 필요

지난해 불거진 해외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환매 중단에 이어 라임자산운용·알펜루트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까지 터지면서 사모펀드 규제 필요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2015년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한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규제 고삐를 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면에 규제 수위를 높이면 모험자본 활성화라는 당초 취지가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운용사와 판매사의 내부통제 강화 중심으로 자정 노력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시각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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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 4년 만에 터진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

사모펀드 시장이 공모펀드 규모를 크게 상회한 것은 오래전이다. 2008년만 해도 사모펀드 설정 규모는 127조원으로 공모펀드 절반 수준에 그쳤으나 2019년에는 412조원으로 공모펀드(237조원)를 크게 뛰어넘었다.

당초 금융당국은 2015년 사모펀드 진입규제를 완화하고 2018년 운용규제를 일원화하는 등 사모펀드 활성화를 꾀했다. 2015년 당시 금융위원회는 기존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통합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일원화하고 규율체계도 단순화했다.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특히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는 인가가 아닌 등록제로 전환해 진입 요건을 완화했다. 자기자본을 기존 헤지펀드(60억원)와 전문투자자 대상 운용업(40억원)보다 낮은 20억원으로 완화하고 전문인력도 최소 3인 이상으로 규정했다.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제도를 개편한 후 신생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가 급증했다. 2015년 당시 국내 자산운용사는 93개였지만 사모운용사 진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2019년 기준 292개로 급증했다. 저금리 기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와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사모펀드 시장으로 몰리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활황세를 누리던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크게 위축됐다.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사모펀드 월평균 수탁고는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9월 월평균 사모펀드 수탁고는 6조2000억원이었으나 2019년 9월부터 2020년 4월 기준 3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개인투자자 자금이 지속 유출됐고 법인과 기관투자자 자금 유입도 둔화됐다.

전문가들은 잇단 환매중단 사태로 인해 국내 사모펀드 시장, 특히 헤지펀드 시장 성장세가 꺾이고 투자자 신뢰도가 크게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제대로 자금을 운용하면 높은 수익률을 내기 어려우니 각종 편법을 동원해 수익률을 높여 이름을 알리고 투자자를 끌어모아 다시 편법으로 투자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라며 “잇달아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자산운용사들도 당분간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운용사의 유동성리스크 관리, 스트레스 테스트 등 필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사모펀드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사모펀드 투자자가 대체로 투자위험 감수능력이 있고 금융지식이 있는 전문투자자 혹은 적격투자자가 대상이라고 보고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해 규제 수위를 느슨하게 적용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으며 사모펀드가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 등을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갖고 있는 점이 부각되면서 규제 수위가 높아졌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사모펀드 운용사에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 인지할 수 있도록 위험 포지션 보고나 정보제공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 특히 운영 리스크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조직, 내부통제, 위험관리체계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유동성 리스크 확산을 방지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비유동성자산에 투자하는 개방형펀드 규모가 증가하자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유동성 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권고했다.

예를 들어 비유동성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개방형 펀드에서 대규모 환매요청이 발생하면 보유자산이 부실화되지 않아도 보유자산을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어 펀드 자산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이는 투자손실을 우려한 다른 투자자의 연쇄 환매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여파가 관련된 다른 펀드나 운용사로 확산될 수 있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 대체투자규제(AIFM) 지침에서는 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위한 위험관리 사항을 상세하게 규정한다. 운용사는 운용조직과 별도로 위험관리 조직을 갖추고 투자전략과 관련된 모든 위험을 파악하고 측정할 것을 권고한다. 운용사가 연간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적정 유동성을 유지하는지 모니터링하는 방안도 규정하고 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의 경우 2016년 발생한 일부 개방형 부동산펀드 거래중단 사태를 계기로 지난해 9월 유동성 리스크 규제에 나섰다. 운용사가 비유동성자산 가치에 중대한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판단하면 펀드 거래를 중지하도록 의무화했다. 운용사가 유동성 리스크 관련 예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투자설명서에 공시하도록 했다. 수탁사에는 유동성 리스크 감독 의무를 부여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사모펀드에 잠재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해외에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 만큼 국내에서도 사모펀드 규제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가 사모펀드 운용사의 위험관리조직, 내부통제 요건 등을 권고하는 만큼 개방형 사모펀드에 대한 유동성 리스크 관리, 정기적인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의무, 유동성 리스크 보고요건 등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독당국이 사모펀드 기본정보 외에 레버리지,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비유동성자산 현황 등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해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며 “운용사 불법 영업행위에 대해 감독기능과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