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산·국책과제 대폭 확대
짜임새 갖춘 과제 선정에 업계 호평
중소 팹리스 인력난 해소 정책 미흡
칩 설계 'EDA 툴' 지원 예산 증액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세계 시스템반도체 기업 순위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시스템반도체 국가별 점유율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 목표 # 지난해 4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은 메모리 중심이던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혁신할 정책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비메모리' 산업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 반영됐다. 이후 삼성전자의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전략'까지 이어지면서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시스템반도체 업계에 활력이 돌았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 기업들은 환영했다. 지난 1년간 이들을 지원하는 국책과제 수가 대폭 늘어났다. 대기업이 합심한 시스템반도체 펀드도 출범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과 산업적 의미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는 평가다. 오랜 문제인 팹리스 업계 인력난을 해소하려면 더욱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또 열악한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이 부담을 느끼는 설계자동화(EDA) 툴 지원도 지금보다 더 큰 수준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부 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가뭄에 단비”…지난 1년 시스템반도체 업계 '전폭 지원' 나선 정부
정부가 올해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에 투자하기로 한 예산은 2714억원이다. 지난해 투자한 881억원보다 무려 3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지난해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열악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육성을 강조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로 삼아, 부활의 불씨를 지펴보자는 것이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정책 실행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육성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폭 늘어난 정부 국책과제다. 일례로 산업부는 올해 165억5000만원 예산을 투입해 시스템반도체 국책 과제를 지원한다.
차세대 시스템반도체 설계·소자·공정기술 개발, 시스템반도체 핵심 설계자산(IP) 개발 등 45개 과제가 포함됐다. 통상의 시스템반도체 국책 과제 수보다 2~3배 늘어났다는 평가다.
아울러 정부가 올 7월 운영을 시작하는 반도체설계지원센터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허브'를 지향한다. 이 센터는 팹리스 운영 지원은 물론, 시제품 제작 시 반드시 필요한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지원 사업도 수행한다. 팹리스가 원하는 해외 파운드리 공정에서도 MPW를 이용할 수 있도록 비용의 70%가량을 지원한다.
또 팹리스와 수요기업 연계를 위한 '융합 얼라이언스 2.0' 사업도 국책 과제에 선정돼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과제 선정 작업을 호평했다. 과제 종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투자가 진행됐다는 분석이다.
구용서 단국대 교수는 “과거 모바일 기기용 칩 개발에 치중된 과제가 많았다면, 올해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바이오 등 다양한 칩 설계 프로젝트에 IP 확보 과제까지 더해져 상당히 짜임새 있는 과제 선정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정부 외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도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 육성에 팔을 걷었다. 지난 3월 양사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1000억원 규모 시스템반도체상생펀드 조성을 완료했다. 삼성전자가 500억원, SK하이닉스가 300억원, 한국성장금융이 200억원을 출자했다. 국내 중소 팹리스의 제품 개발, 해외 마케팅 지원 등에 요긴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특히 삼성은 작년 4월 정부 투자에 맞춰 국내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1위 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인력 양성·EDA 툴 투자 더 늘려야
시스템반도체 업계 전반에 훈풍이 불었지만, 인력 양성과 EDA 툴 지원 분야에서는 더욱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했다는 아쉬운 지적도 나온다.
인력 양성의 경우 정부는 10년동안 채용조건형 반도체 계약학과 및 전공트랙을 신설해 3400명의 학사 인력, 4700명 고급·전문인력 양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후속 조치로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다. 한 예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반도체 설계전공트랙과정'을 시작했다. 연간 시스템반도체 인력 200명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이 사업에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와 13개 대학교가 참여했지만,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아직 배정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전문 인력 양성 계획을 내놨다. 성균관대학교 등 시스템반도체 융합 전공 과정을 신설할 5개 대학을 선정, 6년간 약 100억원씩 지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지원책이 인력 고갈을 겪는 중소 팹리스 업체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한 반도체 설계 전문가는 “과제 수행 기관이 명문대 위주로 선정되면서, 인재들이 중소 팹리스 업체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정부에서도 배출된 인력을 중소 업체로 유도할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EDA 툴 지원에 대해서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EDA 툴은 반도체 칩 설계를 위한 필수 프로그램이지만, 중소 업체들은 값비싼 비용 때문에 구매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ETRI를 통해 EDA 툴 지원 관련 46억원 예산이 투입됐지만, 다양한 툴을 구매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예산이라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산 부족으로 디자인하우스용 EDA 툴 지원은 어려워졌고, 특정 업체 EDA 툴만 사용하게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단기적 정책 아닌 꾸준한 지원 필요
시스템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육성 전략이 국내 반도체 업계 분위기 환기에 큰 도움이 됐다며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 시행 전까지는 투자자들이 '시스템반도체' 언급만 나와도 투자를 꺼려했는데, 요즘은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을 먼저 나서 발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가장 큰 문제였던 설계 인력 공급을 해소하려면 꾸준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설계 분야뿐 아니라 소재, 장비, 모듈, 패키지 분야 등 다양한 시스템반도체 영역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이 나와야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