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법원이 검찰이 제기했던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검찰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다만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할 가능성이 큰 데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대기 중이어서 사법리스크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삼성은 영장 기각을 계기로 준법 경영과 공격적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속영장 왜 기각됐나
9일 오전 2시쯤 구속영장 기각 소식을 들은 이 부회장은 대기하던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곧바로 귀가했다. 2년 4개월 만에 재수감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늦게까지 고생하셨다”는 말만 남겼다.
함께 영장이 기각된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도 집으로 돌아갔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8일 오전 10시 30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시작하고 15시간 3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7년 1월과 2월 이 부회장 구속 영장실질심사가 각각 새벽 6시 15분, 새벽 5시 35분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른 시간 결정이 났지만, 이번에는 피의자 심문 시간이 길었다.
당초 심문이 길어지면서 법원 결정도 2017년 당시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했지만, 결정은 오히려 빨리 났다. 과거에 비해 검찰이 주장한 이 부회장 구속 논리가 법원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표면상 드러난 구속영장 기각의 가장 큰 이유는 검찰이 이미 상당량 증거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삼성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셈이다.
원 부장판사는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불구속재판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측이 2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이틀 뒤 불리한 여론을 무릅쓰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로서는 영장이 기각되면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이번 결정과 관련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각종 불법행위에 관여하고 지시했는지를 입증하기 위한 보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갈길 먼 삼성...사법리스크 여전
총수 구속을 면한 삼성은 준법 경영과 공격적 경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영권승계·노조문제·시민사회소통 3대 과제에서 불법과 편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재판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벗어나려면 준법 경영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삼성이 노사 문제 등에서 사회적 책임 행보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특히 천문학적 투자 등 정상 경영을 위해 총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 삼성은 향후 공격적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아직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갈 길은 멀다.
검찰 기소가 유력한 데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도 진행 중이어서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상 기소는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검찰 기소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결정이 나더라도 검찰은 기소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8차례 열렸던 심의위에서 내린 결정을 모두 검찰이 따랐다는 점에서 검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장기로는 경영권 승계를 매듭지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 당시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자신조차 경영권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부회장이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 등을 물려받으려면 10조원 내외 상속세를 내야한다는 점에서 경영권 승계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