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 왜 잠을 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피로를 해소하고 재충전하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고, 낮 동안 쌓인 정보를 재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가설도 있다. 또 어떤 학자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우리 욕구를 해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중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일 필요는 없다. 잠은 피로 회복과 정보 정리, 욕구 해소 등을 모두 하는 생명의 보편 기제인 것. 그런데 최근 잠의 기능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또 하나 발표됐다. 잠은 뇌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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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세포 활동의 찌꺼기를 청소하는 뇌척수액

사실 잠이 독소를 청소한다는 연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2013년에 마이켄 네더가르드 미국 로체스터대 메디컬 센터 연구팀은 쥐 연구를 통해 자는 동안 뇌에서는 깨어 있을 때 생성돼 노폐물을 씻어내는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다.

연구팀은 쥐의 뇌에 관찰용 염료를 넣은 뒤 자고 있을 때, 깨어 있을 때, 마취되어 있을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뇌에 있는 각종 액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자고 있을 때 신경세포 간 틈새 공간이 크게 확장되면서 뇌척수액이 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세포의 대사 산물을 청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잠을 잘 때 뇌에서는 배관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뇌척수액은 세척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9년 연구는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 로라 로이스 미국 보스턴대 의공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서 잠을 자게 해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2013년 쥐 연구와 유사한 과정을 관찰했다.

사람이 잠에 들면 신경세포 활동이 정지하고 혈액이 조금씩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뇌척수액이 흘러 들어왔다. 즉 뇌척수액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혈액이 자리를 비키는 것이다. 뇌척수액은 뇌 곳곳을 흐르며 신경세포 활동으로 쌓인 노폐물을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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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 모두에서 수면 중에 뇌척수액이 뇌세포 찌꺼기를 청소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 shutterstock)

◇치매 등 퇴행성 질환은 뇌 청소 능력이 떨어진 것

그럼 뇌는 왜 하필 수면 중에 청소를 하는 걸까. 연구팀은 잠이 들면 뇌 신경세포가 활동을 정지하고 이렇게 활동을 멈춰야 신경세포에 해야 하는 산소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렇게 혈액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뇌척수액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뇌척수액이 청소하는 노폐물은 대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다. 베타-아밀로이드는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단백질이라 치매의 주요 원인물질로 지목받고 있다. 뇌척수액은 베타-아밀로이드를 어디로 배출하는 걸까.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 연구팀은 노화한 생쥐의 뇌척수액에 형광물질을 주입해 뇌척수액 경로를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뇌척수액이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노폐물을 배출하는 주요 통로는 뇌 하부에 위치한 '뇌막 림프관'이라는 곳이다. 림프관이란 마치 하수도처럼 액체와 물질을 수송하는 관인데, 뇌에도 림프관이 있어 노폐물을 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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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에 따라 청소 역할을 하는 뇌척수액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기초과학연구원)

또 고규영 단장 연구팀은 나이가 들수록 림프관의 배출 기능이 떨어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인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인지 기능이 나빠지고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 걸리는 이유도 뇌척수액의 청소 활동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연구들은 수면이 우리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일과 공부 때문에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잠을 양보하지는 말자.

글:이인호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