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시작 전에 예상치 못한 영상을 만났다. 산업은행 KDB넥스트라운드 광고가 영화 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광고의 하나였겠지만 금융부 기자에게는 색달랐다. '국책 금융기관이 대중을 상대로 광고를 하다니.'
올해 산업은행이 달라졌다. 그동안의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대중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TV 광고에서도 넥스트라운드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도 강화했다. 올해 초 대학생 기자단을 처음 구성했으며, 네이버·페이스북·유튜브 채널도 잇따라 개설했다.
스타트업 전유물이던 스마트오피스를 조성한 점도 눈길을 끈다. 기업금융실 등 6개 부서 직원들은 소파에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다. 공간 혁신을 통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젊어지려는 시도는 실제 성과로도 나타났다. KDB넥스트라운드는 출범 3년 만에 컬리(마켓컬리), 직방, 브릿지바이오, 왓챠, 패스트파이브 등 국내 유망한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를 지원했다. 현재까지 총 180여개 기업이 투자를 1조원 이상 유치했다. 넥스트라운드는 스타트업 투자 성지로 자리 잡았다.
정부 예산을 지정받는 국책 금융기관이 새로운 길을 걷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예전처럼 구조조정이 기관 중심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명칭 가운데 '산업'이란 단어에서 새로운 답을 찾았다. 제조업, 조선업, 자동차업, 해운업뿐만 아니라 벤처도 산업의 한 종류임을 깨달은 결과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이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여전히 '구조조정 전담기관'이라는 색채가 강하다. 국회와 언론에서도 구조조정 업무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넥스트라운드, 차세대 시스템 등의 시도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이동걸 KDB 산은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혼낼 땐 혼내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은은 내년도 주요 과제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내걸었다.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도 조직했으며, 이 회장도 외부 업체와의 협업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더 젊어질 산은의 모습을 기대한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