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사업이 암초를 만났다. 주민 의견수렴 부실과 안전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해당 지역주민이 반발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는 지난 1월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핵심이다. 발전소 건립이 차질을 빚는다면 글로벌 수소경제를 선도하겠다는 목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밀어붙이기식 사업추진 방식에서 벗어나 충분한 주민 설득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절차적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현황과 해당 주민의 반발 이유 및 해법을 짚어본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전국 곳곳 반발 암초
정부는 지난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오는 2040년까지 수소연료전지 발전 규모를 17.1GW까지 늘린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오는 2022년까지 발전용 수소연료전지를 지금의 5배 수준인 1.5GW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는 미래 에너지 산업 핵심으로 정부가 특별히 관심을 쏟는 분야다. 현재 우리나라는 11월 현재 전국 40여곳(386㎿)에서 수소연료전지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건립 사업을 검토 중이거나 건립 중인 곳만 10여곳이 넘는다. 특히 경상북도는 경주에 100㎿짜리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며, 광주시도 남구와 광산구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해 100㎿급 2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에 해당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반대의견이 강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데다 지역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굳이 우리 지역에 건립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으로 지자체와 발전사업자, 주민 갈등이 1년 동안 이어졌던 인천 동구는 협상이 일단락된 모양새다. 인천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5일 갈등해결을 위해 민관합의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합의안에는 현재 발전소 사업부지에 발전용량을 증설하거나 수소충전설비를 설치하지 않는 조건이 포함됐다. 또 사업자인 인천연료전지와 인천시, 주민으로 구성된 민관 안전환경위원회를 구성해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인천 동구 사례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전국 현안으로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인천을 제외한 타 지역은 해당 주민과 소통부족, 안전성에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해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강릉은 한 민간업체가 1800억원을 들여 발전용량 20㎿ 규모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지만 8개월째 착공도 못하고 있다.
강원도 횡성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횡성읍 조곡리와 우천면 문암리에서 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조곡리는 아예 정부 허가를 얻지 못했고, 문암리는 정부 허가를 거치긴 했지만 주민반대로 공사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강릉지역은 특히 지난 5월 강릉과학산업단지에서 수소탱크폭발사고가 나면서 주민 불안감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경남 함안군에도 민간업체 5곳이 참여해 함안 모로지역에 19.8㎿급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건립하기로 하고, 내년 4월부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지역주민 반응은 냉랭하다. 경남은 함안뿐 아니라 양산시 동면, 고성군 고성읍, 함양군 신관리에 적게는 20㎿에서 크게는 80㎿급 발전소를 건립할 계획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고성의 경우 주민들이 동의 없이 발전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며 민원을 제기한 상태여서 이달 안에 허가 여부가 불투명하다. 함양읍에 건립하기로 한 발전소는 주민의 강한 반대로 최근 정부 사업허가가 보류됐다.
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지 주민들은 최근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반대 전국행동이라는 연합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를 대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위원회는 국민청원과 함께 이달 말께 청와대와 관련 정부부처를 방문해 항의한다는 계획이다.
◇주민 설득 부족과 안전성 의문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이 전국 곳곳에서 주민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건립절차에서 주민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과 안전성, 수소 관련법 제정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수용절차가 부실했다. 현행 전기사업법에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에 주민 동의가 필수 요건이 아니다. 사업자가 해당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업설명회나 간담회를 형식적으로 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인허가 절차도 이중 구조다. 발전소 건축물에 대한 허가권자는 관할 지자체지만 수소연료전지발전사업 허가권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가 맡고 있다. 주민 반발은 그동안 전기위원회가 주민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안전성 확보도 명확한 설명이 부족했다. 지난 5월 강릉 수소탱크 폭발사고, 6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수소가스 폭발사고로 수소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는 막연히 안전하다는 어설픈 설득이 주민 반대를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반대에 동참한 지역주민들은 “사업자와 정부가 친환경적이며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발전소 안전성에 대한 대비가 안 돼 있다”면서 “누구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는 기존 열병합발전소와 달리 질소산화물과 분진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연료인 수소에 대한 안전성 검증은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법 제정을 통해 민간사업자 참여를 늘리고, 주민의견을 제도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는 수소육성과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8개 발의돼 있다. 수소법은 제정하는 것만으로도 민간이 정부의 수소관련 정책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관련법은 특히 발전소 건립과 같이 추진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강릉 수소탱크 폭발사고와 관련해 최근 수소안전관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도 주민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현재 전기사업법은 100㎿ 이상 발전소를 건립할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돼 있지만 개정안에는 주거지역이나 인접지역에서 에너지개발사업을 할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발전 방식]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는 천연가스(LNG)에서 수소를 분리해 공기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물을 전기분해 할 때 수소와 산소가 발생하는 원리를 역이용한 원리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달리 시간과 자연환경에 영향을 안 받는다. 문제는 LNG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질소화합물이나 황화합물 등 불순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화력발전소에 비해 유해물질은 적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100% 친환경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