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 XYZ 코칭]<19>척 보면 착?

요즘 디지털 데이터가 곳곳에 넘쳐난다. 센서를 부착해 칫솔 움직임과 위치·압력을 모니터링한 후 개인에 맞는 양치질 방법을 제안한다. 개인의 면도 습관을 디지털로 측정해 피부 자극과 미세한 상처도 나지 않는 면도 기술을 가이드하는 애플리케이션(앱)도 있다. 전자책(E북)을 읽는 독자가 어떤 장르를 많이 읽는지, 어떤 책은 읽다가 멈추는지, 어느 페이지에서 오래 머무는지, 주로 어떤 문장에서 하이라이트를 하는지도 추적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천할 책 장르와 추천 도서, 추천 광고 문구도 결정된다. 내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시대다. 기억하고 싶은 인생의 모습을 빨리 떠올릴 수 있도록 디지털 형태로 보관하는 라이프 로깅 도구가 많아지면서 일상의 데이터가 부지기수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기술의 힘을 빌려 기록하고 체계를 갖춰 분석하니 스스로 모르고 있던 생활 습관을 알아차리고, 개선할 지점도 찾게 되겠다. 이제 부하 직원의 업무 습관과 개선 방안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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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마케터가 일기예보·교통정보·판매정보·인기뉴스 등 다양한 데이터를 조합해 실시간 수요 예측을 하는 것처럼 부하 직원의 근속연수, 지각시간, 지각횟수, 메일 답변 시간, 메일 메시지 주요 표현, 회의 발언 정도, 웹사이트 방문 기록 등 일상의 데이터를 분석해 업무 습관과 패턴을 알아낼 수 있다. 이미 콜센터나 매장에서는 고객과의 통화 시간, 고객과의 상호작용 정도, 후처리 시간, 고객 체류 시간, 고객 인당 상담 평균 시간 등 데이터를 활용해 구성원의 코칭 포인트를 찾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리더 통찰력에 의지해 온 영역이 이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영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단서가 도처에 있어도 보려고 해야 보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척 보면 착이다” “딱 보면 안다” “내가 예전에 해 봐서 안다” “내 감이 틀린 적이 없다”라는 확신과 확언은 눈뜬 장님을 만들 수도 있다. 호기심 대신 확신을 내세우면 데이터는 우매한 결정을 내리는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지 못하면 무엇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치명타로 작용한다. 모른다는 것을 알면 최소한 유심하게 세심함을 발휘할 수 있다. 선명한 문제를 색출하는 것만큼 복잡한 문제를 감각해 내야 한다. 분명하게 슬픈 사람들 말고도 민감하게 아픈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관점이 다가 아니다”라는 의심과 회의가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려고 해야 보인다. 가설과 관점으로 데이터를 추적해야 지식과 지혜를 찾아낼 수 있다. 데이터가 많아진 요즘 리더는 그전보다 더 말하는 시간을 줄이고 묻고 듣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와 함께 모든 것을 디지털 데이터로만 보면 숫자 뒤에 숨겨진 미세한 마음에 대한 통찰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숫자와 통계를 보느라 구성원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줄어들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만 찾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징후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유럽의 주류회사 비어코는 술집과 음식점 매출이 하락하자 사회인류학자들을 현장에 보냈다. 마치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듯 150시간 영상과 수천장의 스틸사진,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현장노트로 현장 술집의 이모저모를 기록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숫자 뒤에 숨겨진 여러 정보와 지식들을 발견했다. 천편일률적인 홍보물이 어떻게 술집 쓰레기통에 버려지는지, 매출에 핵심 영향을 주는 종업원이 본사의 일방적인 할인행사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은 어떤 소식에 반응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것은 디지털 데이터로는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사회적 환경적 맥락 속에서 사람의 내면은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반응한다. 미묘하면서도 무의식적인 인간의 동기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기계지만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사람이다. 올해 몇 명이 퇴사했는지는 컴퓨터가 뽑아 내지만 누가, 언제, 왜 퇴사를 하게 될 것 같은지를 예측하는 것은 사람이다. 최근 1년 내 회식 참석 인원과 불참 인원은 컴퓨터로 뽑지만 왜 불참하고, 왜 호응이 떨어지는지는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다. “급여 많이 주면 되겠지” “회식시켜 주면 되겠지” “분위기 띄우기 위해 단합 대회 한번 할까?” 등 상투성 동기 부여로는 이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이제 전체에게 공통된 두루뭉술한 해결책보다 직원 개개인의 관심사가 반영된 맞춤 조치가 필요하다. 막연하게 “모두들 애쓰셨어요”가 아니라 “집도 먼데 야근해 준 김 대리 감사합니다” “파워포인트 실력으로 보고서에 힘을 실어 준 장 대리 고마워요” “아이 운동회도 포기하고 일에 매진해 준 강 대리, 미안했어요”와 같이 개별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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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성 연쇄 살인사건 용의자가 나타나면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다시 봤다. 감 믿고 수사하는 박두만 형사(송강호분)와 꼼꼼히 데이터를 추적하는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가 부딪치는 영화 초반부는 요즘의 사무실 풍경과도 닮아 있다. 의논하고 토론하다가 느낌으로 결정하는 중장년 리더들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과 툴을 사용하려는 신세대 리더들의 충돌도 비슷한 모습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신경전을 벌이던 두 형사가 서로 힘을 합쳐 범인을 추적한다. 사무실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펼쳐지길 바란다. 경험, 관행, 믿음에 근거한 직관만을 고집해도 안 되고 데이터 수집, 새로운 방법론, 활용 툴에만 의지해도 안 된다. '무식'은 보이는 것만 보는 의식이 고착화되는 것이란다.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자신의 익숙함을 버리고 호기심을 발휘해야 보이는 것 그 이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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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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