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북중미 월드컵을 보면서, 필자는 2025년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가 한국 과학기술계를 축구에 비유한 인터뷰에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우수한 선수는 방향을 미리 읽고 '공간 패스'를 넣는데, 한국은 아직도 '눈앞의 공'을 쫓는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등 특정 기술이 뜰 때마다 부랴부랴 전문가를 찾는 풍경, 늘 씁쓸하게 느꼈는데, 김교수는 근본 원인을 '약한 기초과학'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수한 연구성과를 낸 김 교수의 비결은 평범해 보이던 흑린을 10년 동안 '한 우물 파기'한 것이었고, 그마저 “운이 좋았다”고 했다. 유행 따라 연구주제를 바꿔야 하는 압박이 심하면 새로운 발견도, 우수한 인재도 자라기 어렵다고 했다.
1970년대에 AI 연구를 시작한 제프리 힌튼 교수도 1990년대 대다수 연구자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린 상황에서도 AI 기초연구를 지속했다. 이런 노력은 2012년 알렉스넷(AlexNet) 개발을 시작으로 50년 만에 새로운 AI 시대를 열었다.
우리 정부의 기존 기초연구지원사업과 이공학학술기반구축사업 중에 이렇게 '한 우물을 장기간 팔 수 있는 과제'가 없지는 않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크지 않고, 그 과제들도 기존 시스템 안에서 지원되기에, 여전히 현장 연구자들은 불편한 시스템 안에서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나아가 아직까지 성과를 '투입 대비 산출'로 재단하는 행정편의주의, 3~6년 중단기 과제 중심 지원구조는 김 교수가 우려하는 위태로움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최근 수립된 '제6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이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초연구 기반 강화 및 과학친화적 사회환경을 조성하자는 기치 하에, 기초·첨단과학 다양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초연구 투자시스템, 첨단·대형과학 연구를 위한 블록펀딩화, 과학을 위한 AI 및 톱-티어 연구자 지원 강화를 천명했다.
이에 '장기·안정적 지원'을 위해 소규모 장기(5년) 기본연구사업이 복원됐으며, 리더급 연구자를 위한 '톱-티어' 유형이 신설돼 9년 간 지원한다. 또 AI, 반도체, 방위·우주산업, 민생체감형, 기술유출 관리 등의 분야는 민관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는 위의 노력에 더해, 반도체 다음의 '미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고민할 시점이다. 특히 기초연구 사업화 주기(Lab-to-Market)는 짧아지고, 수월성 높은 기초과학 성과를 내기 위한 시설·장비 비용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기존 정부 예산의 정치적 사이클 틀 안에서 이뤄지는 연구지원은 어쩌면 '미래 공간'을 만들기에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에 더해,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 우수한 인재 양성·확보·유지, 재원 확보 및 운영의 전문성 강화, 행정부담 제로(Zero)인 지원체계 구축 등이 가능한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기초연구의 본질을 반영한 체계적인 정부 지원체계와 더불어 정부와 민간이 기초과학을 함께 지원하는 '팀플레이'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민관협력으로 수월성 높은 '기초연구'을 지원하고, 산학협력의 '빌드업'을 통해 기업이 결정적인 순간 '골'을 넣을 수 있다면, 산·학·연·관의 멋진 팀플레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단, 미국의 슬론 재단과 같은 영구기금(Endowment)의 조성도 검토해 볼만하다. 눈앞의 유행이 아닌 '미래 공간'을 만드는 과학정책은 세계 최고의 혁신생태계를 만드는 길이다.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jiwoongy@step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