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스마트폰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오늘날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러한 글로벌 분업 시스템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표준'이다. 표준은 우리 기업이 국내외 수백개 협력사에서 공급받는 소재·부품·장비의 성능과 품질을 보장해 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는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 대신 빠른 기술 대응을 통해 신산업을 주도하는 혁신 선도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을 추격형에서 글로벌 기술 선도형으로 전환한다. 산업 난제에 도전하는 알키미스트(연금술사) 프로젝트도 추진하는 등 도전성 강한 연구개발(R&D)을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을 뒷받침하고 완성시키는 것도 표준이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국제표준에 반영돼야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표준이 성능과 품질을 보장하는 수준을 넘어 호환성, 상호 운용성, 확장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혁신 성장 산업의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표준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매년 70건 이상 국제표준을 새롭게 제안하고 200여명의 국제표준화기구 임원진을 배출해 왔다. 개발도상국의 표준화 활동을 지원하는 등 국제표준화 활동에 꾸준히 기여해 왔다. 정부는 지난 6월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표준화 선점 전략'을 수립하고 올해 국제표준화기구(ISO) 총회에서 이사국으로 선출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드디어 지난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ISO 이사회 선거에서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이다. 1993년 이사회 첫 진출 이후 역대 일곱 번째 진출이자 여러 표준 선진국과의 경쟁을 통해 거둔 쾌거다.
이번 이사회 진출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
첫째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였다. 세계 양대 표준화기구인 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는 각각 이사회와 4개의 분야별 정책 이사회가 존재한다. 이번 선거로 우리나라는 양대 이사회와 4개의 분야별 정책 이사회에 모두 진출하는 이른바 '더블 쿼드러플'을 달성했다. 이는 이사회 진출권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6개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표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이사회는 국제표준화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최고 의결기구다. 국제표준화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국내 정책에 반영, 우리 기술로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개도국과의 국제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이사회 선거에서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안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등 많은 개도국의 지지를 받았다. 우리 경험을 살려 개도국에 표준화와 산업화 성공 경험을 전수한 결과다. 동시에 개도국에 대한 더 많은 역할을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나라는 앞으로 ISO 이사회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를 조정하는 가교 역할 수행은 물론 개도국과의 표준 협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신남방, 신북방, 중동, 아프리카로 우리 수출 시장을 더욱 넓혀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ISO 이사국 진출로 '4차 산업혁명 시대 국제표준화 선점 전략'이 중요한 추진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민간, 특히 기업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표준 선도국인 독일은 국제표준화 활동에서 산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웃돈다. 반면에 우리나라 산업계의 표준화 활동 참여 비중은 30%대다.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기업의 관심과 참여도 더욱 늘어나길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글로벌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정부와 민간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상훈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 sanghoon@moti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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