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달 열린 기술혁신대전(ITS 2019)에 참가한 중소기업 텔스타-홈멜은 차세대 통신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공장 모습을 보여줬다. 4세대(4G)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른 5G를 활용해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선보이며, 텔스타 경주공장과 서울 전시장을 실시간으로 연동, 원격 제어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넘어 가상환경에서 실제 공장을 원거리 제어할 수 있음을 소개했다. 이 회사는 애초 자동차 관련 레이저 커팅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는데,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면서 협력사와 함께 스마트 제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제조 혁신에서 나아가 새로운 경제적 가치 창출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기업 간 연결과 협업을 통해 데이터 신산업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생산정보 디지털화에서 가상제조환경 구축·실험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위기와 기회가 함께 찾아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빠르게 도태될 수 있다. 반면에 혁신 플랫폼을 차지한 기업은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는 각각 기존 자동차, 호텔 관광 대기업을 뛰어넘는 기업가치를 가진 기업이 됐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미래 공장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적기에 원자재를 구매 입고하고, 공장 내 모든 사물이 성능과 상태를 서로 소통한다. 이상 발생 시 사람과 소통해 신속 대응한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고, 사용 중에 불편한 부분은 공장에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래 스마트공장의 바탕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있다.
미래 공장을 준비하기 위해 우선 이뤄져야 하는 것이 생산정보 디지털화 및 제품의 생산이력 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현재 이러한 1단계 수준이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받아들이는 스마트공장이다.
그 다음 단계인 생산정보 실시간 수집 분석 및 시스템을 통한 생산공정 제어 등은 일부 중소·중견기업이나 대기업 등 일부분에서 적용되고 있다. 맞춤형 유연생산 및 지능형 공장 단계 스마트공장으로, 이른바 스마트 제조에서 '등대공장'이 추구하는 미래 모습이다.
제조업 미래를 위한 구체적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궁극적으로 가상설계와 가상실험을 통한 제조 프로세스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제조혁신 가속화를 위한 빅데이터와 AI 활용
정부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을 통한 스마트공장 보급 확산사업의 컨트롤타워 운영과 함께 제조업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제조혁신을 추구한 독일조차도 '인더스트리4.0'을 추진하면서 기업에서 활용이나 새로운 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 창출이 간과되고, 연구 중심으로 연구개발(R&D)이 주로 이뤄진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독일은 이후 정책을 중소기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제조 혁신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독일은 클라우드 서비스, 생산공정, 커뮤니케이션, 상거래 등 4대 분야에 대해 전문기관을 선정해 전국을 지원했다. 시장·지역·중소기업 중심의 정책 전환이다.
국내에선 독일을 거울삼아 대·중소 제조기업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산·학·연 협력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 설치된 슈퍼컴퓨터(HPC) 활용 모델이다. 산·학·연 협력모델로 독일 주정부와 대학 지원을 받아 산업계 슈퍼컴퓨터 활용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슈퍼컴퓨터는 대규모 CPU와 메모리를 기반으로 일반 PC나 워크스테이션에서 처리하기 힘든 연산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한다. 궁극적으로 가상설계와 가상실험 등 대규모 연산처리가 필요한 과정을 제조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어, 슈퍼컴퓨터를 산업 혁신 액셀러레이터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슈투트가르트대 내에 있는 산업체 전용 고성능슈퍼컴퓨터센터(HLRS)를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신차 개발 시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에 활용한다. 독일 중소·중견업체도 설계나 조립 시 모델링을 통해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이고, 개발 효율성을 높인다.
미국은 2011년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중소제조업에서 HPC 활용을 강화해 생산성 향상, 혁신 및 경쟁우위 확보를 추구하는 국가 정책을 마련했다. 당시 1000억원 이상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연방 프로그램과 정책을 통해 미국 제조 분야에서 HPC 기반 시뮬레이션 및 모델링 활용을 촉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제조 혁신과 상생으로 플랫폼 경제를 준비하다
전문가들은 인더스트리4.0처럼 민간 기업 중심 독일식 모델을 우리 제조업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대·중소기업 협력과 업종 기반 스마트 제조 혁신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이 참여한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모델은 제조업의 새로운 동반성장 사례로 자리잡았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업종별 특화 스마트공장 시범사업도 중소기업 협동조합 신사업 모델로 기대된다.
아울러 정부가 중소기업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센터를 지원함으로써 전산실이나 컴퓨터를 보유하지 않고도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원하는 솔루션을 활용하는 안이 제시됐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기업 전용 'AI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중소기업도 AI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대기업처럼 신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 불량 원인을 탐색할 뿐만 아니라 미래 수요를 예측하는 '더 똑똑한 스마트공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 간 연결과 협업으로 데이터 신산업을 창출하도록 지원해 중소기업이 스마트 제조혁신 주인공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담당한다. 우리 경제 허리를 담당하는 경제 주체다. 한편으로 낮은 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 비해 대내외 변화에 취약하다.
스마트 제조 혁신은 초연결·초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한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는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스마트공장 보급과 확산은 정부의 지속 지원과 함께 민관의 적극 협력이 필요하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