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차세대 반도체 중심 한국으로…글로벌 장비업계 R&D센터 집결

# 연매출 10조원이 넘는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가 한국으로 연구개발(R&D)센터를 이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세계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60조원 규모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압도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데다 향후 차세대 반도체 시장도 주도할 것이란 판단에 램리서치는 본사 R&D 이전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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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리서치 직원들이 반도체 장비를 제조하고 있는 모습<사진=홈페이지>

반도체 소자 회사와 장비 회사 간 협력은 상시 이뤄진다. 장비가 있어야 반도체 소자를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소자가 개발되지 않으면 장비 역시 공급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구개발은 각 사 인력들이 서로 왕래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램리서치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삼성 개발진이 찾거나 램리서치 연구 인력이 삼성이나 하이닉스를 방문하는 식이다.

이는 삼성뿐 아니라 인텔, TSMC와 같은 회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장비를 확인하려면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램리서치 본사를 직접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협력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 간 물리적 거리가 상당하고 시차도 많이 나다보니 상시 논의는 불가능에 가깝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구조다. 또 한 장비 회사가 여러 반도체 소자업체를 상대하다보니 R&D센터에 드나드는 인력을 통한 핵심 정보 및 기술 유출도 우려를 샀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고위 관계자는 “기술 보호를 위해 고객사마다 공간을 분리하고 허락된 인력만 출입을 허용했지만 이를 불안해 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램리서치가 한국에 R&D를 두기로 한 목적은 핵심 고객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그만큼 밀착 지원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램리서치 핵심 시장은 한국이다.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회사 매출 중 가장 많은 35%가 한국에서 발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장비업체와 협력은 필수다. 후발주자와 격차를 벌리고 미래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장비·소재 회사와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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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적으로 소자 회사와 장비 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램리서치의 R&D센터 한국 이전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 메모리반도체 산업 기술 허브로 부상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거대 반도체 장비사가 자사의 핵심인 R&D를 옮기는 건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른다. 당장 핵심 인력 이탈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인텔이나 TSMC 등 다른 반도체 고객사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램리서치가 R&D 완전 이전이라는 결단을 내린 건 미래 가치가 그 만큼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 주도권을 가진 반도체 소자 회사와 협력해 신기술과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함으로써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최소 10년 이상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한다는 판단에 따라 전략적으로 본사 R&D 이전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김중조 제주대 석좌교수는 “지금은 반도체 시황이 안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적용 분야가 많아지고 수요가 늘어 2030년대 이후까지도 반도체는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런 장기 안목을 바탕으로 결국 세계 D램 허브가 한국이라고 보고 연구개발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한국 R&D센터 설립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플라이드는 내부 승인을 마치고 설립 시기, 형태, 방식 등을 검토 중이다.

램리서치는 본사 R&D를 한국으로 이전하는 반면 어플라이드는 맞춤형 R&D 형태로 한국 반도체 회사에 특화된 조직을 둘 예정이다.

세계적 반도체 장비사의 한국 R&D센터 이전 및 설립은 건설과 고용 등 경제적 파급효과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전반에 걸쳐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미래 핵심 기술을 한국에서 연구개발함으로써 기술 확산과 전문인력 양성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램리서치는 실제 한국 R&D센터에서 자사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국산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미래 반도체 개발 및 양산을 위한 핵심 기능이 한국에 모이면서 다른 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추가 진출도 예상된다.

국내 한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램리서치가 한국에 R&D센터를 두면 삼성전자 등에서 근무했던 경력직 인력과 함께 물리학, 수학 등을 전공한 국내 신규 인력을 채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들이 수년간 주요 장비 업체에서 핵심 공정을 익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 분위기도 활력을 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램리서치는 국내 R&D 투자를 위해 그동안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왔다. 이달 말 경기도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한국 R&D 설립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몰려 있는 경기도 내에 거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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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평택 반도체 1라인 외경<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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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개발한 96단 4D 낸드 기반 1Tb QLC <사진=SK하이닉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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