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독립이 우리 산업계에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미중 무역갈등,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으로 주력산업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대학은 기술독립을 이루기 위한 '핵심' 기관이다. 대학을 통해 인재가 창출되며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연구가 이뤄진다. 나아가 신기술과 연구 인력이 산업 전반에 퍼질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대학은 산업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
올해 창간 37주년을 맞은 전자신문은 기술독립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제시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학 관계자와 함께 국내 산업·기술 현황과 연구개발 경쟁력, 대학 인재양성 방안, 산학협력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수환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김원용 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 협의회 회장
서성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과장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이해숙 교육부 산학협력정책과장
<사회> 문보경 전자신문 정치정책부 차장
<소재·부품분야 인재양성 왜 취약했나>
◇사회(문보경 전자신문 차장)='기술독립'이란 과제는 명확한데 그 목표를 어떻게 찾아갈지가 어렵다.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생태계를 마련할까 고민된다. 우리나라는 소재·장비 분야 경쟁력이 다소 취약하다. 이 분야 인력양성이 왜 취약했다고 보는가.
◇안진호(한양대 교수)=1980년대까지는 경제 및 산업발전을 위한 인력공급에 초첨이 맞춰졌고 1990년대 이후 국가연구개발사업이 확대되면서 대학 연구역량 강화 투자가 본격화됐다. 2019년도 현재 기술개발(R&D) 인력양성사업은 9개 부처에서 1조원 정도 규모로 늘었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연구 분야는 산업과 괴리가 있다. 대학의 평가와 대학에서 교수 평가가 우수국제논문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교수는 논문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그때그때 학문 이슈에만 집중한 탓에 정작 산업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다.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 간 소재 갈등은 기초공학과 과학의 접점 분야다. 일본이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 것은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김원용(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 협의회 회장)=산학협력과 기업체의 괴리가 있다. 산업체의 경우 원천기술 확보 및 이를 통한 융합기술 개발과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중요하다. 반면에 대학 교수는 높은 수준의 기술 연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논문을 쓰려고 한다. 대학과 달리 기업은 당장 사업화 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기술을 희망한다. 괴리감 때문에 미스매치 현상이 있다. 우리나라의 산학협력은 기업이 필요로 하여 자발적으로 추진되기 보다는 정부주도 R&D 과제가 많은 편이기도 하다.
◇김수환(서울대 교수)=최근 한 중소기업 임원을 만났는데 10년 동안 대학에 준돈이 100억원이 넘는다며 대학은 못 믿겠다고 비판했다. 대학이 양산 기술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학은 중소기업이 '푼돈' 주면서 많은 것을 양산하길 바란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나는 생각을 좀 바꿔서 중소기업에 새로운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산학과제를 하려면 금액을 줄여도 좋으니 아무리 못해도 2년 정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말했다. 또 모든 기술은 내가(대학)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나는(교수) 기업이 기술을 양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했다. 우리 연구실 연구비는 줄었지만, 논문 수는 늘었다. 기업도 매출을 내게 됐다. 결국 상생관계가 만들어졌다. 대학과 기업 모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한발 물러서고, 대학은 싼 노동 인력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업이 풀 수 없는 기술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 교수는 책임감을 갖고 기업이 기술을 상용화할 때까지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
<국내 대학의 산학협력 수준은>
◇사회=일본, 독일, 미국 등이 소재·장비 강국으로 꼽을 수 있다. 우리 대학은 산학협력이나 정부 프로젝트에 의존해 R&D를 수행하고 인재를 양성한다. 소재장비 강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산학협력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안진호=다른 선진국과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산학협력은 대기업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활발하지만 중소기업은 여러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중소기업의 여력과 오너의 인식 문제로 재정적인 여유가 없고 너무 현실적이고 단기성과만을 요구한다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는 대학교수의 태도다. 대기업과의 연구에서는 첨단연구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과의 산학과제에서는 현안 해결형 과제로 인해 논문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이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 수행을 꺼리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중소기업과 대학교수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은 협력할 수 있는 교수를 찾기 어렵고, 교수는 자기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만나기 힘들다. 외국 대학의 경우에는 기업과 교수를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를 전문화하여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고 있는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해숙(교육부 과장)=잘되는 부분과 아쉬운 부분 두 가지가 존재한다. 대학-산업계 간 연계를 토대로 한 캡스톤 디자인 교육과정 이수학생 수는 2017년 21만3000명으로 2013년 대비 8만 여명 증가했다. 산업체 활동을 수행한 전임교원 수도 2700여명으로 2013년 대비 1400여명 증가하는 등 교육 현장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울러 대학의 기술이전 수입료 또한 2017년 774억원으로 2013년 대비 약 280억원 증가하는 등 다방면에서의 산학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러한 산학협력 노력에도 대학 산학협력단 운영수익 중 산업체에서 지원한 연구수익의 비중은 7.9% 정도에 불과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성일(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선진국은 축적된 인적자원과 기술을 보유한 대학 및 연구소를 혁신플랫폼으로 활용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 동력으로 활용하는 반면, 우리는 학부·공학계열 위주의 교육으로 산업현장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자면 IMD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학 간 지식전달도는 2013년 27위에서 2016년 34위로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산학협력법에 따라 교육기관, 국가, 연구기관 및 산업체가 상호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5년마다 '산업교육 및 산학연협력 기본계획'을 만들고 관계부처 간 협력하여 새로운 지식기술을 개발·보급·확산·사업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원용=대학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모델이 중요하다. 그래야 단시간 내 일본과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다. 중앙대는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좋은 성과를 만든 적이 있다. 중앙대는 2015년 이후 동국대,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숭실대, 이화여대 등 타 대학과의 기술분야별 포트폴리오 및 기술패키징을 수행했다. 10개 이상의 기업 맞춤형 기술을 묶어 이전하는 성과를 냈다.
2016년에는 동국대·이화여대와 해양안전 관련 비콘 및 무선통신 관련 기술을 모아 중앙대 3호 자회사를 설립했다. 동국대와 이화여대는 기술실시 계약을 체결해 기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산학협력 우수 실적을 창출했다.
<대학의 연구, 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가>
◇사회=대학에서 많은 연구를 하지만 연구 결과가 산업 전반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서성일=응용·상용연구와 사업화가 별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 격차가 벌어지는 'TTM(Time-To-Market)' 등의 문제가 있다. 연구와 사업화 간의 시간 간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실험실 창업을 전주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 실험실창업 이노베이터 육성, 투자연계형 공공기술사업화기업 성장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실험실 창업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대학이 논문 또는 특허 형태로 보유한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술집약형 창업'이다. 일반 창업기업에 비하여 평균 고용 규모가 3배가량 높으며(9.5명), 5년 생존율(80%) 또한 일반 기업(27%)에 비하여 우수하다.
◇김수환=우리나라 대학은 지나칠 정도로 정부 프로젝트에 의존해 R&D를 수행하고 있다. 정부의 프로젝트는 시류에 따라서 매번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나노바이오 과제가 뜨면서 전국 대부분 교수가 나노바이오 전문가가 됐다. 요즘은 인공지능(AI)가 부상하면서 상당수 교수가 AI 전문가를 자처한다.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인력은 젊은 연구자다. 젊은 연구자들이 들어와서 정부 과제를 하려면 AI로 시작할 수 있다. AI 열풍이 분다고 모든 연구진이 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보통 연구자가 처음 선택한 주제가 평생의 주제가 된다. 그래서 대학이 신임 교수를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른바 트렌디하지 않은 연구 분야도 지원해줘야 한다. 정부도 오랜 기간 연구를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김원용=산학협력은 유기적인 활동이 핵심 성공요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학협력 선순환 구조, 산학협력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 등이 필요하다. 산학연협력 생태계 촉진을 위한 문화 확산과 제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대학이 주도적으로 산학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확대하고, 산학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산학협력 친화형 학사제도 또는 교원인사제도 개편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산학협력 친화형 대학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
◇사회=정부가 수조원의 프로젝트를 가동해 소재·부품 경쟁력을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취약한 분야 경쟁력을 살리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것을 또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는 의견이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김수환=단기·중기·장기로 나눠서 정부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자가 장기간 정부 지원을 받으면 네이처, 사이언스 등 과학저널과 노벨상을 이야기 한다. 장기 프로젝트여서 모두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평가도 부실하다. 큰 연구비가 들어갔으니 어느 누구도 실패를 원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대마불사'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정부 프로젝트를 연구 저변 확대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부 장기 프로젝트는 분야와 상관없이 적은 연구비(약 5000만원 정도)를 5년 이상 지원해야 한다. 단기 프로젝트는 기업이 주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단기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대학이 가지고 있는 지적재산권은 우선 정부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지식재산권부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가치가 활용되면 그 때 비용을 정부에 지불하고 이를 정부가 받아서 관련 대학에 보상해 주는 선순환 구조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에 업적용으로 만들어진 지식재산권도 많지만 진흙 속에 진주처럼 좋은 지식재산권도 숨겨져 있다.
◇안진호=너무 급하게 추진하다가 보니 기술적인 중요성 혹은 시기적인 우선순위가 객관적이지 못하게 매겨져 예산집행 효과 우려가 높다. 산업구조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최근 정부의 투자 계획은 당연히 반갑지만, 진정한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인 검증의 단계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된다.
연구조합 등 연구 중간조직 역할을 다시 활성화하고, 현재 너무 비대해져 있는 연구관리기관의 역할은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과 같은 PM 제도, 진정한 전문가를 뽑아 그 전문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말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여 지속력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는 정권이 바뀌거나 공무원이 교체되면 연구개발 방향성도 바뀌는 게 현실이다.
◇이해숙=긴급한 산업수요에 따른 가시적·단기적 연구개발과 함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 응용연구의 원천이 되는 기초연구 지원 확대와 함께 미래산업 수요에 부응하는 집단·응용연구까지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대학과 정부의 역할은>
◇사회=산업 경쟁력을 가지려면 인재를 비롯한 생태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현 시점에서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또,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안진호=이제는 정해진 답을 찾는 교육방식으로는 미래 인재 키워낼 수 없다. 느리더라도 인재가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교육시스템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산업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교수 재교육도 필요하다. 법대교수에게 코딩을 교육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융합 교육을 이야기하지만, 교수가 모르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대학 교수 모두가 스스로를 연구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은 부실화 될 수밖에 없다.
또 산학협력을 막는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평가의 기준이다. 모든 평가를 우수국제논문으로 기준으로 삼는 한 논문 생산이 어려운 산학협력은 활성화 될 수 없다. 산학협력을 대학의 평가와 교수의 평가에 상당부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대학이 국가사업을 재정확보의 수단으로 여기면 안 된다.
◇김원용=대학은 산학협력 활동하는 기업과의 코디네이터 조직을 통해 주요 의사결정은 물론 실제적인 협력 프로그램을 설계 및 실행한다. 이를 통해 산학협력 활동에 투입되는 자금이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이 되도록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각 주체들의 동반성장에 쓰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이 자생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입주기업들에 대한 보조금·세제 지원을 유지해야 한다. 각 산학협력 주체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전방위 지원도 해야 한다.
정부주도형에서 수요지향(기업주도형)으로의 전환을 위한 지속가능 협업 체계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 의존도를 줄이고 자발적 협력이 이뤄지는 생태계 내 혁신적인 주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학은 폐쇄적인 산학협력에서 개방형 산학협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숙=최근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고학력 기술인재와 중소기업 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학에서는 학부생부터 박사 후 연구자까지 체계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대학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이 산업계로 이전될 수 있도록 기술이전·사업화 등 산학 간 유기적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대학이 기본역량이 탄탄한 우수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산학 간 연계를 통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 및 기술이전·사업화 등 산학협력이 내실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 등을 통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체계적인 인재양성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BK21 사업 등을 통해 우수 석·박사 고급인력이 육성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LINC+사업 등을 통해 대학의 산학협력 역량 강화를 돕겠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