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카드업계의 수상한 순익 '선방'...12개 밴(VAN)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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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정부 가맹점 수수료 인하 조치로 카드업계는 연간 7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객 혜택 등을 줄이고 이른바 '혜자 카드'를 퇴출시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1, 2분기 카드사 순익은 1% 하락에 그쳤다. 카드업계는 고강도 구조조정과 운영비용을 절감, 선방했다는 자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매출 선방 이면에는 카드 결제 대행을 맡고 있는 하위 밴(VAN) 매출을 줄여 간극을 메우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실제 십수년 간 같이 카드 결제 업무를 영위하던 산하 밴사 순익은 수백억원이 깎이면서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여기에 더해 카드업계는 이미 정액제를 정률제로 대부분 전환해 밴사에 줄 대행비를 상당수 인하했고, 밴사 대행 업무가 빠지는 직승인 체계를 가맹점에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매출 하락을 지켜내려는 카드사 선택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지만, 한국 신용카드 인프라를 같이 만들어왔던 산하 밴사만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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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카드사 순익 비교해보니

본지가 국내 8개 전업카드사(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1~2분기 당기순익을 조사한 결과 순익은 -1%에 그쳤다.

1위 신한카드는 올해 2분기 순익 1489억3800만원을 기록 작년 2분기(1425억3800만원) 대비 4.5% 증가했다. 우리카드는 2분기 424억6400만원의 순익을 달성, 작년 2분기(283억200만원) 대비 50%가 늘었다. 다른 카드사 2분기 실적을 보면 삼성카드는 716억4000만원으로 작년 대비 -13.5%, KB국민카드 681억3500만원(-29.7%), 현대카드 576억4900만원(12.4%), 롯데카드 175억6500만원(105.6%), 하나카드 154억4500만원(-40.8%), 비씨카드 306억1800만원(-10.1%) 등이다.

8개 전업사 2분기 전체 순익은 4524억5400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보다 1% 하락했다.

밴 업계 관계자는 “일회성 비용 등을 감안하더라도 카드사 손해를 밴 대행비로 메우는 상황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며 “여기에 무서명 거래와 직승인 결제 체계 등이 도입되면 중소형 밴사는 생존 자체가 힘든 지경에 왔다”고 설명했다.

◇12개 밴(VAN)사 매출, 5% 이상 추락

본지는 국내 12개 밴사 매출도 조사했다. 나이스, 한국정보통신, KIS정보통신 등 12개 밴사 2분기 매출은 5%이상 급락했다. 창립 이래 최대 위기다.

통상 밴 매출은 승인중계, 매입, 수거, 기타비용으로 나뉜다. 2분기 밴사 전체 매출은 2779억909만원이다. 작년 2분기 2927억9114만원 대비 5.1% 하락했다.

부문별로 보면 승인중계 매출은 올해 2분기 1807억원8939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1931억7181만원 보다 6%이상 줄었다. 매입 부문도 올해 354억8086만원을 기록 작년(383억5579만원)과 견줘 7.5% 빠졌다. 수거 부문은 올해 454억3086만원으로 작년보다 0.1%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 무서명 거래와 정률제 전환이라는 악재까지 만나며 기업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중소형 밴사 일부는 시장에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실제 LG유플러스 전자결제 사업부 매각을 신호탄으로 케이에스넷, 제이티넷 등이 시장 매물로 나왔다.

한 밴사 대표는 “카드사 매출을 잘 분석해보면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운영비 절감 외에 밴사 대행 수익을 30% 이상 줄여 리스크를 줄인 사례가 많다”며 “이대로라면 한국에서 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네 북 된 밴사, 왜 우리만 죽이나

한국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카드만 있으면 전국 어디에서든 소비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프라를 만드는데 밴사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십수년간 밴사는 카드사와 선진 결제 인프라를 구축한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다. 그냥 앉아서 돈버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같은 여론 때문에 밴사는 카드사 압박에 입을 닫았다.

밴 업계는 다른건 몰라도 국내 카드 인프라 투자와 결제 시스템 선진화에 기여한 부분은 소비자들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결제 과정에 '밴'이라는 산업이 형성된 구조다. 해외의 경우 소비자, 가맹점(판매점), 카드사 등 3자 체제로 결제 인프라가 운용되지만, 우리나라는 밴을 포함해 4자 체제로 분류한다. 빠른, 그리고 완벽한 카드결제 인프라는 이런 4자 체제의 특성이 있어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과거 농협 카드정보 유출 등 대형 카드 정보 유출 사태 등이 발생하거나 시스템 장애가 났을때 유일하게 백업시스템을 가동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밴사가 관련 업무 백업 시스템을 가동하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에도 밴사가 실핏줄 역할을 한다. IC카드 교체가 대표적이다.

마그네틱 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할때 가맹점 단말기 교체를 밴사 하위 밴 대리점을 통해 교체했다. 그 안에 들어가는 보안 표준과 단말기 인증도 모두 밴사에서 담당한다.

최근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에도 밴사가 뛰어들었다. 전국 단위 가맹점 모집에 밴사 네트워크를 가동하기 위해서다. 수익보다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분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밴사 매출 하락에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사업 다변화에 실패했다는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은 밴사를 대상으로 너무 급진적, 일방적 '마른 수건 쥐어짜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드 후방산업을 전담하는 밴사가 무너질 경우, 선진화한 한국 카드 시스템 체질이 약화되고, 유일하게 4자 결제 체제를 보유한 한국 결제 인프라도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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