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7주년:기술독립선언Ⅰ] 주력산업 초격차를 확보하라

# 지난해 말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수출 상위 8대 업종의 글로벌 경쟁력이 3년 후 경쟁국에 크게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산업 경쟁력 현황과 전망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8년 현재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 우위를 가지는 업종은 무선통신기기, 디스플레이, 석유제품, 선박 총 4개지만 3년 후에는 선박만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3년 후 무선통신기기, 디스플레이에서 한국을 추월하고 철강과 석유제품에서는 경쟁력이 비슷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아직 2021년이 되지는 않았지만 1년 정도가 지난 현재 이 같은 예측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주력산업의 활력 저하가 실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출은 2715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13대 주력 품목 중 일반기계·자동차·선박류 수출만 증가한 반면에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 등 10개 품목은 감소했다. 하반기 수출 역시 중국과 미국 성장세 둔화, 반도체 단가 하락과 업황 회복 지연 등으로 수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올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우리 주력산업이 2011년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거나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서 받는 영향도 있지만 중국 등 신흥국뿐만 아니라 선진국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국내 생산경쟁력도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한 산업이 성숙 단계에 진입하면 저성장과 더불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다. 수출 효자 품목인 스마트폰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비해 스마트폰 시장 진출에 늦었지만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세계 판매 1위 회사가 됐다. 그러나 현재는 화웨이, 오포·비보, 샤오미 등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을 받는 중이다. 중국 1위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는 조만간 삼성전자를 뛰어 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도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선 이제 중국에 추월당했다. BOE 등 중국의 디스플레이 회사들은 보조금 등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 힘입어 어느새 세계 최대 LCD 제조사가 됐다.

주력산업이 성숙단계에 진입해 새로운 발전전략이 필요한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거나 글로벌 가치사슬에 있어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방법, 서비스 등 관련 산업으로 사업범위 확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방법 중 연속성을 확보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초격차'가 꼽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산업은 더욱 발전시켜 후발주자가 추격을 못하도록, 즉 지속적인 고부가치 제품 개발로 차이를 벌리는 것이다.

비록 LCD는 중국에 추격을 당했지만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로 중심축을 옮겨 달아날 수 있었다. 자체 발광 소재를 사용해 LCD와 달리 백라이트가 필요없고, 유연한 특성 때문에 휘거나 접을 수 있는 OLED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유일 양산 중이다. 기술 난도가 높아 똑같은 소재, 똑같은 장비를 써도 생산하기가 어렵다. OLED의 미래 가치에 주목하고 투자와 기술 개발에 노력한 결과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차세대 미세공정 기술로 꼽히는 극자외선(EUV) 기술은 노광장비 1대 가격만 15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투자 자체가 진입 장벽이다. 세계 2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는 EUV 설비 도입에 막대한 투자가 들고, 공정 기술 개발도 어려워 EUV 도입을 포기했다. 반면에 파운드리 업계에서 후발주자이던 삼성전자는 EUV에 승부수를 던져 다른 회사들을 제치는 동시에 이 분야 1위인 대만 TSMC와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 초격차 기술 확보 중요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주력산업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다. '대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말미암아 정부가 R&D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 분야 R&D 사업 지원 예산은 2009년 1003억원에서 2017년 314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력산업이 차별화된 기술과 초격차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지난 8월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 전략 및 혁신대책' 브리핑에서 “언제부터인가 첨단산업, 미래산업 쪽의 R&D 예산이 많이 증가했다. 반면에 '주력사업은 기업이 알아서 하겠지' '대기업 R&D를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나'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토끼도 중요하지만 집토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주력산업의 펀더멘털을 챙기고 R&D 사각지대, 틈새를 꼼꼼히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독립의 첫 출발점은 바로 주력산업의 초격차 확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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