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도체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 극자외선(EUV) 공정 기술입니다. 혹시 '무어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컴퓨터 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제조 기업으로 유명한 인텔 설립자 고든 무어가 고안해낸 법칙인데요. 2년마다 반도체 칩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가 두 배나 증가할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실제 반도체는 지난 수 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저장·연산 칩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 연구자들 사이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칩은 작아질 만큼 작아지고, 용량도 높아질 만큼 높아져 무어의 법칙이 깨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반도체 제조 방법이 EUV 공정입니다.
Q:EUV 노광 공정이 무엇인가요?
A:우선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제조 작업인 '노광 공정'부터 알아야 합니다. 노광 공정은 빛을 이용한 반도체 제조 과정이에요.
반도체 칩은 동그란 모양 실리콘 웨이퍼에 미세한 전기 회로를 여러 개 그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똑같은 회로를 수십 개 동시에 찍어내서 같은 네모 모양으로 자르면 칩이 완성되죠.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는 미세한 층을 겹겹이 쌓고, 그때마다 전기가 통하는 회로를 판화처럼 깎아냅니다. 깎아내기 전에는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작업이 바로 노광 공정입니다. 빛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밑그림을 그려냅니다.
빛이 회로 모양대로 밑그림을 그리면 제 4물질 상태인 플라즈마로 웨이퍼를 깎아내는 과정(에칭)을 거칩니다. 전기가 통하는 반도체 회로가 완성되는 것이죠. 이때 빛이 그리는 밑그림에 따라 깎아지는 모양과 미세함이 달라집니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도체 크기가 작아지고, 우리가 저장해야 할 정보는 많아지니 더욱 정확하고 세밀히 회로 밑그림을 그려내야 합니다. EUV 빛은 기존에 사용했던 빛인 불화아르곤(ArF) 빛보다 훨씬 짧은 파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13분의 1이나 짧아서 훨씬 얇게 회로를 그릴 수 있습니다. 칩을 더 작고 고용량으로 만들 수 있는 필수적인 기술이죠.
Q:EUV 노광 공정이 기존 공정과 달라지는 점은 무엇인가요?
A:EUV는 예민합니다. 웬만한 물질에 흡수돼 자취를 감추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체, 액체, 심지어 우리가 마시는 공기에서도 흡수돼 사라집니다. 이 빛을 잡아내기 위해서 전혀 새로운 개념의 노광 공정 기기가 필요합니다. 기존 노광공정에서는 ArF 빛이 회로 모양을 크게 그린 포토마스트와 렌즈를 통과하면 웨이퍼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공정은 자취를 감추는 EUV를 살려내기 위해 기계 안에 10개 이상의 거울(미러)을 놓습니다.
고도 기술로 개발한 미러가 EUV 빛을 반사하고, 전혀 새로운 성질의 포토마스크에 그려진 회로를 머금은 빛이 웨이퍼에 가닿는 방식이죠.
아직까지는 네덜란드 장비회사 ASML만이 이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장비 속에는 3000개 선이 연결돼 있고, 이 선을 연결하면 2㎞가 넘습니다. 정교한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제품 옮기는 일도 쉽지 않아요. 보잉 747 비행기 3대가 움직여야 할 만큼 '대이동'이 필요하답니다. 장비 가격은 1500억원이 넘을 만큼 비쌉니다.
이 장비 외에도 위에서 언급했던 포토마스크, 마스크 성능을 검사하는 장비, 포토마스크 보호막 역할을 하는 펠리클 등이 기존과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돼야 합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죠.
Q:EUV 포토레지스트는 무엇인가요?
A:최근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 EUV 포토레지스트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죠?
EUV 노광공정에서 웨이퍼 위에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포토레지스트라는 것을 얇게 발라야 합니다. 웨이퍼에 회로 모양을 새기려면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죠. 그런데 EUV는 대부분 물질에 흡수되는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포토레지스트 성분도 새로워야 합니다.
일본은 수년 간 노하우를 축적해서 EUV 포토레지스트를 선도적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JSR, TOK, 신에츠 등이 그 회사입니다. 세계 시장 90%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높습니다. 포토레지스트를 이용해 반도체 칩을 잘 만드는 삼성전자가 일본 규제로 이 물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차세대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기술 대체를 위해 정부와 국내 각 업체가 팔을 걷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적인 갈등이 있더라도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주장인 것이지요.
(주최:전자신문 후원:교육부·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련도서]
◇ '어린 과학자를 위한 반도체 이야기' 박열음 지음, 봄나무 펴냄
익숙하면서도 낯선 반도체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준다. 반도체가 나타나기 이전에 사용됐던 진공관에서부터 반도체의 원료와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과정, 또 다양한 반도체 종류와 쓰임새까지 담았다.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반도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핵심 기술이다. 앞으로 발전할 반도체 모습을 상상하며 마무리하는 이 책은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읽어 볼만하다.
◇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지훈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IT 거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이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들의 기술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저자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에너지와 경험을 읽지 못하면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세상을 뒤바꿀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IT 거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거인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인물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