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77>혁신 퍼스트 무버

시장 선도자 이익(First-mover Advantage). 개척자 이익(Pioneer Advantage)으로 일컫기도 한다. 최초의 시장 점유자가 차지하는 이익은 오랫동안 시장 리더십과 수익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견도 많다. 이제는 고전이 된 '개척자 이익:로직 또는 전설'에서 제러드 텔리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개척자보다 이들을 뒤따라 나선 초기 시장 리더를 승자로 봤다. 지배적 디자인이 제 모습을 갖추지 않은 초기 시장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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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때 느림보 또는 카피캣이라며 백안시되던 것이 이제는 패스트 팔로어나 혁신 모방이라는 훨씬 멋진 포장으로 경영 구루의 추천 목록에 들어가 있다.

정답은 무엇일까. 판단 기준은 없을까. 여기 한 가지가 있다. 우선 내 제품의 기술 진보 속도를 평가해 보자. 기술 변화가 누적 및 점진 형태인가. 아니면 하루 다르게 새 기술이 나오고 있는가. 일단 '그렇다' '아니다'로 답해 두자.

그다음 따져봐야 하는 것은 시장 진화 속도다. 시장이 1년에 몇 배씩 성장하고 있다면 '예'라고 답하자.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정도라면 '아니오'로 답하면 된다.

이제 도식을 하나 그려 보자. 우선 기술 진보는 Y축, 시장 진화는 X축에 각각 놓자. 각각 예, 아니오 두 칸으로 구분하자. 그럼 네 가지 조합이 나온다. 기술과 시장 모두가 안정된 '잔잔한 바다', 기술이 변화를 주도하는 '주황 바다', 수요 변화가 주된 '초록 바다', 둘 다 출렁이고 있는 '폭풍의 바다'가 그것들이다.

이제 하나씩 따져보자. 우선 잔잔한 바다는 시장 선발자에게 나쁘지 않다. 1908년 윌리엄 후버는 진공청소기를 최초로 시판한다. 판매는 그럭저럭 됐다. 1935년 후버 디자이너 앙리 드레퓌스가 비로소 제대로 된 기술 청사진을 구현한다. 이즈음 판매도 차츰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런 잔잔한 바다에서 후버는 수요에 맞춰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결국 '후버'는 시장을 지킬 수 있었다.

폭풍의 바다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바다에 첫발을 내디디는 것은 도전이다. 이곳엔 해도도 항로도 없다. 셀룰러폰을 최초 개발한 건 AT&T지만 정작 시판 허가를 받은 곳은 아메리테크였다. 인터넷 브라우저란 것을 대중화한 것은 네스케이프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에 버텨내지 못했다. 새 기술과 더 큰 자본으로 무장한 후발 기업을 몰아내기란 쉽지 않다.

초록 바다는 소니 워크맨이다. 1979년 이런저런 기술을 조합해 놀라운 제품을 만들었다. 10년 동안 4000만대가 팔려나갔지만 제품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워크맨은 미니 오디오의 대명사로 남았고, 시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황 바다는 디지털 카메라다. 소니는 1981년에 최초로 마비카를 출시한다. 인기는 금세 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은 몇 달이면 구닥다리가 됐다. 오랜 투자 전쟁을 벌인 후에야 시장의 22%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 한번 따져 보자.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어떤 곳인지. 바다를 선택할 수 없다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내 전략인 것은 아닌지.

명마 품종인 리피짜너는 어릴 때 짙은 색이었다가 차츰 밝은 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지 멋진 백마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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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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