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에 대응해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집중 육성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전자 등 20대 핵심 품목은 1년 안에 미국·유럽 등에서 대체 수입품을 찾고, 80대 품목은 대규모 연구개발(R&D)·인수합병(M&A)을 활용해 장기간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 또 범부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신설, 국산 기술 개발에서 실증까지 이어지도록 지원을 강화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11개 부처는 이 같은 방안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5일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범부처 종합 지원 대책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은 산업의 중요성이 크지만 특정 국가 수입 의존도가 높은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선별했다. 국산 수급이 시급한 20대 품목은 1년 안에 공급처를 다변화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한다. 다른 80대 품목은 대규모 R&D와 M&A 등 가능한 방식을 모두 동원, 공급 안정망을 찾는다.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20대 핵심 품목의 국산 기술 개발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2732억원을 긴급 투입한다. 핵심 기술 개발(957억원)은 물론 신뢰성 확보(720억원), 양산평가(350억원)까지 지원한다. 실제 현장에서 개발된 기술을 제조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게 목표다. 자금은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 2주 안에 지원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추경 자금을 투입해 20개 핵심 기술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확보하겠다”면서 “기술 개발이 완료 단계에 있는 품목에 대해 신뢰성 평가 280건, 양산 평가 100건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80대 품목에 대해서는 향후 5년 동안 대규모 R&D와 M&A를 통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 그 가운데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고 있는 핵심 과제는 예타 면제를 통해 빠르게 추진한다. M&A 인수 자금 2조5000억원을 투입, 국내 공급망 핵심 품목 가운데 기술 확보가 어려운 분야를 대체한다. 국산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해외 기술을 국내에 접목해서라도 일본 의존 현상에서 탈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안에 범부처가 참여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꾸리고, 자금·입지·세제·규제특례를 포괄하는 정책 지원 패키지를 만든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는 수요-공급 기업 또는 수요-수요 기업 간 협력 모델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경제부총리를 위원장, 산업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각각 선임한 장관급 회의체로 구성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2021년에 일몰될 예정인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한다. 법 대상을 소재·부품에서 장비까지 확대한다. 소재·부품·장비 육성을 위한 규제 특례 근거를 확보, 국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과 함께 경제 전반에 걸쳐 활력을 되살리는 폭넓은 경제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면서 “추경에 이어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부터 정부의 정책 의지를 충분하게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면서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 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경제' 중요성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경제가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시장”이라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일 열린 긴급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향해 '적반하장' '이기적인 민폐 행위' 등 날선 발언을 쏟아냈지만 이날은 차분하고 치밀한 대응 기조를 보였다. 일본의 추가 경제 도발을 계기로 혁신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우리 경제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