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이 챙겨야 할 첫째는 지역구 증액사업도, 특정목적 감액도 아닌 '국가예산결정의 합리적 기준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김춘순 동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3월 국회예산정책처장이라는 중책에서 벗어나 교정에 발을 디뎠다. 김 석좌교수는 입법고시 8회 출신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장 등을 거친 '자타공인' 재정전문가다. 지금도 기획재정부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페루 수석고문으로 활동하며 제3세계에 재정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행한 저널(OECD JOURNAL ON BUDGETING)에 세계 70개 나라의 예산(재정) 권한을 비교 분석한 논문을 싣기도 했다. 해당 책자는 SSCI급(사회과학분야 학술논문인용지수) 국제학술지다. 김 석좌교수의 논문이 실린 것은 2016년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 시절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런 그가 국가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에게 당부한 말이 있다. 사업 필요성·타당성에 입각한 냉철한 예산 선택을 해야 국회의 재정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 석좌교수는 “국회에서 의결된 정부예산안의 수정양상과 변동 추이를 분석해 '예산정책연구(KCI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했다”면서 “19대 국회(2013~2016년) 기간 동안 국회 예결위에서 이뤄진 4년간 정부예산심의 결과”라고 소개했다.
분석 결과 국회에서 증액이 이뤄진 분야는 복지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중심이었다. 그는 “복지수요 증가에 대한 처방이자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평가했다.
김 석좌교수는 “SOC 예산 증액은 지역수준 민원의 반영이고 복지예산 증액은 국가수준 민원의 반영”이라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민원성 예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의회재정권의 역할,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큰 틀의 국가정책을 다듬어 예산을 책정하는 책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국회가 예산 심의를 위해 늦가을 밤늦도록 고생하지만 예산확정 후 종종 여론의 날카로운 칼날을 맞아온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회가 권한에 비례한 책임을 충분히 부담했는가에 대한 비판이라는 설명이다.
김 석좌교수는 정부가 예산(재정)권한을 갖고 국회는 예산을 심의만 하는 우리나라도 '예산법률주의'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고 했다. 앞으로 국회 책임이 보다 강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재정운용이 상당 부분 정부 주도로 결정되고 집행됐다면 앞으로는 국회의 재정집행에 대한 통제도 강화돼 국민 의사가 재정에 보다 잘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 석좌교수는 “아무쪼록 올 가을 20대 국회의 마지막 예산심의에선 좋은 성과가 표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바람도 나타냈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